[정다훈의 클릭오페라] ‘시몬보카네그라’ 일파만파로 번지는 25년의 감동과 여운

[정다훈의 클릭오페라] ‘시몬보카네그라’ 일파만파로 번지는 25년의 감동과 여운

발행일 2011-04-11 10:37:29 정다훈 객원기자

오페라 애호가인 7세 딸 아이가 좋아하는 국내 바리톤 가수가 2명 있다. 한명은 '바다의 숨결, 대지의 울림, 하늘의 메아리'라는 수식어를 가진 바리톤 고성현이고 또 다른 한명은 최근 국립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에서 발랭탱 역을 맡았던 바리톤 이상민이다. "뭔가 멋있고 대개 좋은 목소리였어." 고성현의 목소리는 녹음된 실황으로 듣고, 이상민의 목소리는 오페라극장에서 직접 듣고 나서 내린 평이다.

이런 딸 아이에게 고민이 생겼다. 국립오페라단의 <시몬보카네그라>공연에 바리톤 고성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소식, 자신도 알고 있는 지휘자 정명훈이 방망이(지휘봉이란 말 대신 방망이로 언급함)를 들고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그 아저씨들이 도대체 뭘 볶아낼까?"라는 질문을 수차례 했기 때문이다. 즉, '보카네그라'라는 단어가 발음상 '볶아내그라'로 들리기도 하는데, 여기서 어린 아이 특유의 호기심이 유발된 것이다. 아이는 극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7세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워 더 크면 함께 보자고 했다. 7일 첫날 공연이 끝나고 엄마를 보자마자 한다는 말도 "엄마! 뭘 볶아내는지 확인했어?"였다.

그래서 간단히 답해줬다. "삶을 볶아내드라". 이 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의 표정이 자못 진지했다. 설마 이해를 다 할까 싶어 대강 답 한 거였는데, 아이는 이렇게 되물었다. "기쁘고 슬프고 그런 게 다 들어있었던 거야?". 이 말을 듣고, 웬만한 어른보다 더 오페라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재목으로 자라날 듯 싶었다.

<시몬보카네그라>에는 '25년의 감동과 여운'이 담겨있다. 사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무대를 가진 후 25년만에 국내 무대에 선다는 점, 베르디가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정한 작품이라는 점, 프롤로그에 이어 2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진행되는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공연 시작 전부터 '25년'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회자됐다. 직접 관람한 결과 '25'라는 숫자 외적인 의미를 떠나, 그만큼 긴 감동과 여운이 일파만파로 퍼져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 이었다.

어찌보면, 여타의 유명 오페라에 비해 이번 작품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려한 아리아, 화려한 무대장치 등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려는 오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 초반부터 시종 어두운 무대에서 저음의 바리톤과 베이스가 밀담을 나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케스트라 역시 관객들의 귀를 쭈뼛 들어올리게 만들정도로 조심스러우면서도 밀도있게 연주된다. 기본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온 관객들은 어두운 객석에서 핸드폰 불에 의지해 프로그램 북을 펼쳐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여기서 점차 적응 된 사람은 물 속에 떨어진 한방울의 잉크가 천천히 퍼져나가듯 감동에 빠지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유명한 아리아가 하나도 없잖아’라는 불평과 함께 노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평민으로 태어나 14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제노바의 총독이 된 <시몬보카네그라>가 들려주는 '삶'은 파란만장하다. 부와 권력, 영예를 얻기 위한 정치적 암투는 남성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다만 아쉬운 점은 1막의 평민과 귀족들의 칼싸움 장면이다. 실제 칼싸움을 연출하기 보다는 칼을 서로에게 들이댄 후 정지기법으로 장면을 연출 하는 편이 훨씬 더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 25년만에 되찾은 딸 아멜레아와의 재회도 잠시, 자신의 딸이 정적의 아들 가브리엘레와 사랑에 빠져있는 기막힌 현실, 부녀사이임을 모르는 가브리엘레의 질투와 분노등이 펼쳐진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 열광하는 여성관객들의 취향에 부합했다.

<시몬보카네그라>의 진짜 매력은 음악, 무대디자인, 조명, 연출, 연기의 조합에 있었다. 각 막의 느낌을 온연히 체감하게 한 서주, 가수들의 목소리 위에 서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묻혀있지도 않은 오케스트라의 음악, 현악기의 존재를 마치 한명의 가수처럼 보여준 지휘자의 솜씨 및 연주자들의 실력은 관객의 귀와 입 그리고 가슴을 함께 벌어지게 했다. 어두운 객석에서 더욱 빛나보였던 마르코 필리벡의 조명, 넓은 무대를 치밀하게 구획해 각 장면보다 깔끔함이 돋보였던 이탈로 그라시의 무대디자인 역시 이번 작품의 일등공신이었다. 또한, 3막에 이르러 시몬이 죽음과 맞바꾸고 얻게 되는 평화 장면에서는 겹쳐있던 무대 장치들이 벌어지고 열리면서 연출가 마르코간디니가 떠올랐다. '아!' 하는 마음 속 탄성을 질렀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감동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같은 작품이라도 오페라는 출연진에 따라 볼 때마다 감상이 다르다. 시몬 역 한명원을 먼저 만나고, 고성현을 나중에 만났다. 한명원의 공명감 있는 목소리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반면 잃어버린지 25년만에 딸을 찾은 아비의 뜨거운 눈물과 회환, 1막 후반의 파올로를 향한 '천벌을 받을 것이다'고 하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총독으로서의 카리스마는 고성현이 보다 강력했다. '내 딸아~'를 길게 빼서 부르는 장면에서는 실제 딸을 키워본 아비의 부정이 느껴졌으며, 파올로의 배에 칼을 겨누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 이상으로 응집된 폭발력이 전달됐다. 다만, 초반 프롤로그 부분에서는 고성현의 긴장감이 덜 풀린 듯 해 관객들도 함께 긴장하게 만들었다. 고성현의 커튼콜 역시 인상적이었다. 귀여운 악동처럼 무대를 퐁퐁 뛰면서 관객들의 환호에 답했기 때문이다.

주연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 역시 관객들의 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멜리아 역 소프라노 강경해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25년간 떠돌며 산 여인 특유의 외로움, 아버지를 향한 부성애가 목소리에 스며 들어있었을 뿐 아니라, 군더더기 없는 고음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1막 초반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대 뒤에서 미성의 목소리를 전달해 관객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 가브리엘레 역 테너 박성규, 한번 들으면 빠져들게 만드는 묵직한 저음의 베이스 드미트리 벨로젤스키(피에스코), 작은 체구로 악역의 현신을 체감하게 한 파올로 역의 바리톤 김주택 등 모두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몇 년 뒤에는 딸과 함께 오페라 <시몬보카네그라>의 감동을 나눠가져야 할 듯 싶다.

국립오페라단은 곧 풀랑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5/5~8)로 오페라 애호가들의 마음을 두드릴 예정이다. 또한, 베르디의 <시몬보카네그라>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면, 베르디의 또 다른 작품 <돈 카를로>를 주목해보길. 16~17일 양일간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메트 오페라 <돈 카를로> 5막 풀 버전이 그것이다. 16세기 스페인 궁정을 배경으로 스페인 왕자와 프랑스 공주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 안에 부자간의 갈등, 사랑과 질투, 우정과 신념, 정치적 음모와 종교적 암투 등 인간의 갖가지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몬보카네그라>와 함게 인본주의자로서 베르디의 역량을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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