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 그는 지금도 텐트 한 동이 전부다

[김산환의 캠핑폐인] 그는 지금도 텐트 한 동이 전부다

발행일 2011-10-11 15:44:28 김산환 칼럼리스트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잡지사에 입사하던 날, 잘 부탁한다면 악수를 건네는 손길이 뭔가 허전했다. 내 눈길이 아래로 쏠렸다. 그의 손가락이 세 개였다. 새끼손가락과 약지손가락이 없었다. 눈길을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싱끗 웃었다.

 

 

 그와는 자주 파트너가 되어 취재를 다녔다. 등산 전문잡지다 보니 산을 오르내리는 일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힘든 산행을 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었지만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흘렀다. 내가 오름길에 지쳐 숨을 헐떡일 때도 보채는 일 한 번 없었다. 그저 뒤에서 묵묵히 선 채로 숨을 조절할 뿐이었다. 그는 세 개의 손가락으로도 무거운 카메라를 잘도 움켜쥐었다. 정상인인 내가 잡아도 휘청할 만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산길을 뛰어다니며 사람과 산을 앵글에 담았다. 손이 곱아드는 겨울, 꽁꽁 언 가죽 등산화의 끈을 조이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는 그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도 그는 씩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손가락에 얽힌 사연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 사연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자칫 그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다 둘이 야영을 할 때면 손가락은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냐는 질문이 목청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참았다. 그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잃어버린 손가락에 대한 사연을 들은 것은 그가 아닌 그의 후배로부터였다.

그가 손가락을 잃은 것은 대학산악부 시절이었다. 봄볕이 좋던 어느 날, 그는 산악부 선후배들과 대구 팔공산으로 암벽등반을 하러 갔다. 선배가 먼저 등반을 했고, 그는 확보를 봤다. 혹시라도 선배가 추락하면 줄을 잡아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게 그의 임무였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선배가 추락한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일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이 하늘로 붕 떴다. 선배가 추락하는 충격이 그대로 그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의 몸은 내동댕이쳐지듯 바위에 부딪혔다. 순간 그는 손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은 자일을 움켜쥔 손에서 뻗쳐왔다. 그가 바위에 부딪힐 때 자일을 움켜쥔 손이 먼저 부딪혔고, 선배가 추락하면서 급속하게 딸려나가던 자일이 그만 칼이 되어 그의 손가락을 자른 것이다.

그는 자일을 놓고 싶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그러나 놓을 수가 없었다. 그가 자일을 놓는 순간 자일의 반대편에 매달려 있는 선배는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았다. 손가락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자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강한 주문에 따라 손에 온힘을 가했다. 그가 자일을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 동안 멍하게 바라보던 동료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었다.

그는 동료들이 자일을 단단하게 잡았을 때까지도 자일을 움켜쥐고 있었다.

두 개의 손가락은 그렇게 떠나갔다. 화가가 되고 싶던 미술학도의 꿈도 날아갔다. 그러나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뚝심 좋은 경상도 사내는 좌절하지도 않았다. 다만,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그는 붓 대신 카메라를 잡았다. 화폭에 담고 싶던 화가의 꿈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로 했다. 
 
손가락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난 뒤 한동안 그를 존경했다. 자일 파트너가 되면 생과 사를 함께 나눈다는 산 사나이들의 지독한 우정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았다. 말보다 항상 행동이 앞서는 이 우직한 사내의 사내다움에 매료됐다.

그러나 그 후로도 그는 한 번도 손가락 사연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다.
  
그와는 일 년쯤 함께 일했다. 세상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떠 있던 1996년 겨울. 그는 잡지사에 작별을 고했다. 사진을 더 배우고 싶다며 유학을 간다고 했다.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려면 하루 이틀이 걸리는 게 아닐 텐데, 그는 그동안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입을 봉하고 있다가 작별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었다. 경상도 사내라더니.

그와의 인연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 세월이 족히 십년은 됐다.

풍문에 그는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맨이 되었다가 다시 작은 방송국의 프로듀서가 됐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여행길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우리는 헤어졌고, 또 얼마 동안은 연락도 없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다. 어쩌다 그의 소식을 들으면 듬직한 어깨와 늘 허전하게만 보이던 그의 손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안부를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를 새로 구입한 김에 전화번호를 정리하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고 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다가 요즘도 산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는 가끔 산에 가기는 하지만 요즘은 캠핑을 다닌다고 했다. 아이들이 생기고 난 뒤의 변화라고 했다. 시간이 되면 함께 캠핑을 가자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지금도 잡지사 시절 산에 메고 다니던 그 조그만 텐트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어른 둘이 들어가면 딱 맞던 에코로바 5인용 텐트. 그 텐트에서 사내 다섯이 겨울잠에 들어간 뱀처럼 서로의 몸을 칭칭 감아 겨울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다. 고약한 땀 냄새와 발 냄새로 숨이 턱턱 막히면서도 온기가 그리워 서로의 몸을 난로 삼아 껴안고 자던 밤이 있었다. 그 텐트를 지금도 쓰고 있다고 했다. 젖은 장갑과 양말을 말리던 콜맨 휘발유 스토브와 짐승의 눈처럼 어둠을 훑던 페츨 헤드랜턴, 밥그릇도 되고, 커피 잔도 되고, 술잔도 되던 씨에라 컵을 지금도 쓰고 있다고 했다.    

나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캠핑이 상상이 됐다. 그가 친 작은 텐트 속에서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세 개의 손가락으로도 힘차게 망치질을 하고, 반짝반짝 윤이 나게 코펠을 닦는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그가 가진 것들, 추억을 제외하면 이제는 낡고 볼품없어진 그 캠핑 장비를 지금껏 소중히 갈무리하며 그만의 캠핑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젊은 날의 추억이 서린 그 텐트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와 술잔을 나누며 그의 허전한 손 이야기도 물어보고 싶었다. 이제 남의 눈치를 보거나 미안해하지도 않는 나이가 된 것을 핑계 삼아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를 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캠핑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누리려 하는지 모른다. 콘크리트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품을 찾아간다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문명의 이기와 편리를 그곳에도 넘치게 하려고 든다. 값비싼 장비가 캠핑 이력을 말해준다고 믿는 캠퍼, 명품에 열광하는 통속적인 인간군상을 캠핑장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곳에 과연 진정한 캠핑의 가치가 있을까.

 

 

가벼워지자.

조금은 부족하게 떠나자.

자연에 대한 갈망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 여기에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작은 텐트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기자. 우리의 여장이 가벼워질수록 자연 속으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자.

 

댓글 (0)
로그인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300
아우디 신형 Q5 국내 사양 살펴보니, 에어 서스펜션은 최상위 트림만

아우디 신형 Q5 국내 사양 살펴보니, 에어 서스펜션은 최상위 트림만

아우디코리아가 신형 Q5 트림별 사양을 공개했다. 신형 Q5는 3세대 풀체인지 모델로 아우디 최신 내연기관 플랫폼 PPC, 고효율 마일드 하이브리드 플러스 시스템 등을 탑재했다. 특히 최상위 트림은 에어 서스펜션을 제공한다. 가격은 6968~7950만원이다. 아우디코리아는 지난 6일 신형 Q5 사전계약을 시작했다. 신형 Q5 사전계약은 디젤 40 TDI로 가격은 콰트로 어드밴스드 6968만원, S-라인 7557만원, S-라인 블랙 에디션 7950만원이다. 아우디코리아는 추후 가솔

오토칼럼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10대 한정판 출시, 가격은 1억5190만원

마세라티 그레칼레 10대 한정판 출시, 가격은 1억5190만원

마세라티코리아는 그레칼레 네로 인피니토(Nero Infinito)를 출시한다고 16일 밝혔다. 그레칼레 네로 인피니토는 브랜드 인기 컬러 네로 템페스타와 레드의 조화로 세련미와 다이내믹함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10대 한정 판매되며, 가격은 1억5190만원이다. 그레칼레 네로 인피니토는 이탈리아어로 '끝없는 흑색'을 의미한다. 마세라티는 절제된 품격과 대담한 존재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안목 높은 고객을 위한 맞춤 제작 프로그램 푸오리세리에를 통해 무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마이바흐 SL 모노그램 실물 첫 선, 3억원대 럭셔리 오픈카

마이바흐 SL 모노그램 실물 첫 선, 3억원대 럭셔리 오픈카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15일(현지시간) SL680 모노그램 실차를 미국서 공개했다. 마이바흐 SL 680 모노그램은 AMG SL을 기반으로 외관과 실내 곳곳에 마이바흐 디테일이 적용됐으며, 전용 서스펜션과 배기 시스템 등이 적용됐다. 올해 하반기 국내 출시될 예정이다. 마이바흐 SL 680 모노그램은 AMG SL63을 기반으로 마이바흐 역사상 가장 스포티함이 강조된 모델이다. 마이바흐 SL 680 모노그램은 올해 하반기 국내 출시가 확정됐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기아 모닝 2025년형 깜짝 출시, 가격은 1395~1870만원

기아 모닝 2025년형 깜짝 출시, 가격은 1395~1870만원

기아는 2025년형 모닝을 15일 출시했다. 2025년형 모닝은 연식변경으로 전방 충돌방지 보조와 차로 유지 보조, 지능형 속도 제한 보조 등 최신 ADAS 시스템이 기본 탑재됐으며, 프레스티지 트림부터는 풀오토 에어컨이 추가됐다. 가격은 1395~1870만원이다. 2025년형 모닝 세부 가격은 1.0 가솔린 트렌디 1395만원, 프레스티지 1575만원, 시그니처 1775만원, GT-라인 1870만원이다. 2025년형 모닝 가격은 기존 2024년형과 비교해 트렌디 70만원, 프레스티지 75만원, 시그니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DS4 부분변경 공개, 프랑스식 럭셔리 해치백

DS4 부분변경 공개, 프랑스식 럭셔리 해치백

DS는 DS N°4를 14일(현지시간) 공개했다. DS N°4는 기존 DS4의 부분변경으로 외관과 실내 디자인이 소폭 변경됐으며, 다양한 고급 사양이 추가됐다. DS N°4는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도 개선됐다. DS N°4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로 운영된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DS는 최근 차명 체계를 DS N°(Number)로 변경했다. DS N°4는 기존 DS4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DS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판매가 중단된 상태인데,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완전히 철수하는 것은 아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토요타 C-HR 공개, 300마력대 소형 전기 SUV

토요타 C-HR 공개, 300마력대 소형 전기 SUV

토요타는 C-HR을 14일(현지시간) 미국에 공개했다. C-HR은 e-TNGA 2.0 플랫폼 기반 소형 전기 SUV로 77kWh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완충시 EPA 기준 467km를 주행할 수 있다. 또한 듀얼 모터 단일 사양으로 총 출력 343마력을 발휘한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C-HR은 소형 전기 SUV다. C-HR 북미형은 유럽형과 다르게 전기차 단일 라인업으로 운영되는데, 2026년 미국부터 판매가 시작된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C-HR은 e-TNGA 2.0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휠베이스는 2750m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포드 신형 익스페디션 국내 출시 임박, 에스컬레이드 정조준

포드 신형 익스페디션 국내 출시 임박, 에스컬레이드 정조준

포드 신형 익스페디션의 국내 투입이 임박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포드코리아는 최근 신형 익스페디션 인증을 완료, 본격적인 출시 준비에 돌입했다. 신형 익스페디션은 풀체인지 모델로 세련된 외관과 디지털화된 실내 등이 특징이다. 3분기 중 출시될 예정이다. 익스페디션은 포드 풀사이즈 SUV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쉐보레 타호 등이 대표적인 경쟁 모델이다. 신형 익스페디션은 5세대 풀체인지다. 신형 익스페디션은 국내에 최상위 트림인 플래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토요타 bZ 공개, 505km 주행..라브4급 전기차

토요타 bZ 공개, 505km 주행..라브4급 전기차

토요타는 bZ를 1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공개했다. bZ는 토요타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전기차 bZ4x의 북미 버전이다. 다만 bZ는 bZ4x와 외관 디자인, 사양 등에서 일부 차이가 있으며, 1회 완충시 EPA 기준 최대 505km를 주행할 수 있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bZ는 토요타가 유럽 등 일부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bZ4x의 북미 버전이다. bZ는 단순한 리브랜딩이 아니라 스타일과 옵션, 성능 등에서 bZ4x 대비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bZ는 e-TNGA 플랫폼을 기반으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아우디 e-트론 GT 기본형 공개, 타이칸보다 비싸다고?

아우디 e-트론 GT 기본형 공개, 타이칸보다 비싸다고?

아우디는 e-트론 GT 기본형을 13일(현지시간) 공개했다. e-트론 GT 기본형은 듀얼 모터를 탑재해 총 출력 503마력을 발휘하며, 105kWh 배터리로 1회 완충시 WLTP 기준 622km를 주행할 수 있다. 초급속 충전, 스포츠 시트 등이 기본 사양이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e-트론 GT 기본형은 S e-트론 GT, RS e-트론 GT, RS e-트론 GT 퍼포먼스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춘 e-트론 GT의 엔트리 트림이다. e-트론 GT 기본형 유럽 가격은 10만8900유로(약 1억7200만원)로 S보다 대폭 저렴해졌

뉴스탑라이더 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