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환의 캠핑폐인] 애기단풍 아래서

[김산환의 캠핑폐인] 애기단풍 아래서

백양사 진입로에 접어들자 사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광선검처럼 어둠을 갈랐다. 계곡을 건넌 후 자칫 지나질 뻔한 입구를 겨우 찾아 가인 캠핑장으로 들어섰다.캠핑장은 한산했다. 오직 텐트 한 동 만이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모닥불을 쬐고 있는 캠퍼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얼굴을 작게 끄덕이는 것으로 연대감을 표시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오늘 밤을 함께 할 이웃이 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나는 이런 연대감을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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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더치와의 사랑

[김산환의 캠핑폐인] 더치와의 사랑

뭐가 가장 재밌어?캠핑을 가는 내게 묻는다.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해. 사내가 고추 떨어지게 무슨 요리야! 타박이 날아든다. 그러나 어쩌랴.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을. 나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선사한 것은 더치 오븐이다. 이 무쇠 냄비는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 어떤 것이든 이 안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회가 동하는 맛있는 요리로 변신한다. 고기나 야채나 상관없다. 쌀과 스파게티, 밀가루 어떤 재료를 넣어도 먹음직스러운 요리가 되어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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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커피향을 맡는 남자

[김산환의 캠핑폐인] 커피향을 맡는 남자

그의 손길은 아주 섬세했다. 커피 그라인더에 커피 빈을 넣고 돌릴 때도 행여 한 알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했다. 커피를 따르기 전에 뜨거운 물로 잔과 드리퍼를 데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드리퍼 안에 필터를 깔고, 그 위에 곱게 간 커피를 넣은 후 아주 조심스런 손길로 주전자의 물을 부었다. 학처럼 목이 긴 그 주전자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는 대나무 대롱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처럼 가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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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북위 50도, 여름에 대한 짧은 기록

[김산환의 캠핑폐인] 북위 50도, 여름에 대한 짧은 기록

사람들이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어디에서 캠핑을 할 때 가장 행복했냐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북위 50도의 여름. 질문이 이어진다. 북위 50도? 그곳에는 뭐가 있는데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춥지 않나요? 거긴 동토의 땅이잖아요? 그들의 오해에 나는 두 가지 짧은 여행의 기록을 들려주는 것으로 북위 50도의 여름에 대한 찬사를 대신한다. 바이칼, 영혼을 비추는 호수그때는 왜 그런 무모한 여행을 했을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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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마음에 묻은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고

[김산환의 캠핑폐인] 마음에 묻은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고

땅끝으로 가는 행렬은 끝이 없었다. 송지면소재지를 지나면서 차량이 꼬리를 물더니 송지호해수욕장을 앞두고는 꼼짝도 안 했다. 땅끝까지는 아직도 4km는 남았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서울도 아닌, 남도의 외진 곳까지 와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왜들 난리일까. 여름만 되면 해남 땅끝이 달아오른다. 땅끝의 강한 끌림에 이끌린 사람들이 등불을 향해 돌진하는 부나방처럼 몰려든다. 그들 가운데는 조국애에 눈뜬 청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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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또 다른 시선

[김산환의 캠핑폐인] 또 다른 시선

커피를 마시며 재즈의 선율이 흐르는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였다. 샌들을 신고 있는 발에서 갑작스런 통증이 느껴졌다. 정확히 둘째 발가락 두 번째 마디 부분이었다. 발가락뼈를 바늘로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서 폴짝폴짝 뛰었다.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 나에게 이 아픔을 안겨준 녀석이 궁금해졌다. 무엇이었을까. 분명 독을 가진 생명체에게 물린 것이 분명했다. 땅벌이었을까. 독거미는 아닐까.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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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따뜻한 이웃

[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따뜻한 이웃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휴양림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을 찾은 것은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온종일 비가 퍼부었다. 계곡물도 급하게 불어났다.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텐트 속에서는 빗방울 긋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급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 소리만 귀청을 따갑게 했다. 휴양림 직원은 비가 더 내리면 다리가 잠길 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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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낮잠

[김산환의 캠핑폐인] 낮잠

바람이 이마를 살짝 치고 간다. 가볍다. 머리카락 몇 올이 잠깐 흔들린다. 달궈진 공기가 시속 1km의 속도로 다가온다. 달짝지근하다. 혀로 침을 굴리며 입맛을 다신다. 등줄기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서늘하다. 모로 누워 등짝을 넌다. 나뭇잎이 눈에 아른 거리다. 눈부시다. 실눈을 뜨고 오후 햇살을 째려본다. 얼마나 잤을까.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등짝이 흥건하게 땀이 뱄다. 오후 햇살도 퍽이나 깊어졌다. 나무의 그늘이 텐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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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노을, 꿈꾸는 시간

[김산환의 캠핑폐인] 노을, 꿈꾸는 시간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서편 하늘을 감색으로 물들이는 석양에 가슴까지 노을로 홀딱 젖는 이 때. 석양은 이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라고, 돌아가 휴식의 기쁨을 누리라고 넌지시 일러주고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 그 석양을 보내며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하루가 지나간 세월로 묻히는 시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느낀다. 미국 서부 뉴멕시코의 사막 한가운데서 잠든 적이 있다. 한여름에는 기온이 50도에 육박하는 열사의 땅이다. 대지를 바싹 말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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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안에 물고기가 산다

[김산환의 캠핑폐인] 내 안에 물고기가 산다

아들 녀석은 잠들어 있다. 나는 몰래 텐트를 빠져 나왔다. 캠핑장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낚싯대를 챙겨서 강으로 향한다. 급류를 타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에서 한기가 묻어난다. 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신새벽에 강물에 발을 담그는 일이 꼭 즐겁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쩌랴. 손맛을 보려면 새벽이 최적의 시간인 것을. 동트기 전과 해질 무렵에 물고기의 먹성이 가장 활발하다는 것쯤은 초보 낚시꾼도 안다.강물 속에 누군가 있다. 물살이 세차지는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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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무지개를 쫒는 소년

[김산환의 캠핑폐인] 무지개를 쫒는 소년

비 온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한 눈에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무지개였다. 소년은 무지개를 갖고 싶었다. 소년은 무지개를 잡아오겠다며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엄마는 그런 소년을 눈물로 배웅했다. 소년은 숲과 들과 산과 강을 건넜다. 그러나 무지개는 잡히지 않았다. 소년이 한걸음 다가가면 무지개는 한걸음 물러났다. 소년이 지쳤을 때 무지개는 한걸음 더 다가왔다. 그러나 소년이 용기를 내면 무지개는 다시 뒷걸음질 쳤다.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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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0.5평의 행복

[김산환의 캠핑폐인] 0.5평의 행복

죄를 지어 감옥에 간 죄인 가운데 감옥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갇히는 방이 있다. 징벌방이다. 그 중에서도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을 ‘먹방’이라 부른다. 이곳에 갇힌 죄수에게 허락된 공간은 0.5평. 류관순 열사가 갇혔던 서대문 형무소의 독방은 높이 1.4m, 가로세로 각 1m다. 누울 수도, 설수도 없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비참한 공간이다.그러나 나에게 0.5평은 자유를 의미한다. 나를 자연으로 안내하는 탈출구다. 누우면 머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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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푸른 비의 초대장

[김산환의 캠핑폐인] 푸른 비의 초대장

비가 오는 데 캠핑을 간다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내린 날 캠핑을 간다고 하자 모두가 어이없어 한다. 나는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빗물이 스며들어 질척한 바닥에 떠 있는 텐트와 눅눅한 침낭과 옷가지, 무엇보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걷을 때의 곤혹감은 누구라도 맞닥트리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캠핑의 운치는 비 오는 날에 살아난다. 텐트에서 듣는 빗소리, 그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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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강물, 주저리주저리 흐르는 오래된 그리움

[김산환의 캠핑폐인] 강물, 주저리주저리 흐르는 오래된 그리움

인제 방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한 것은 해거름 무렵이다. 벌써 야영장으로 가는 비포장도로에는 어둠이 내려서고 있다. 제1야영장에 일찍 자리를 잡은 캠퍼들은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화로에는 알맞은 높이로 불꽃이 일었고, 아이들은 모닥불을 쬐며 캠핑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야영장을 감싸고 쏜살같이 흘러가는 계곡물에도 저녁노을처럼 불빛이 물들었다. 제2야영장에도 몇 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며칠 전 폭우가 내린 탓에 계곡물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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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봄볕, 화이트 와인, 그리고 휴식

[김산환의 캠핑폐인] 봄볕, 화이트 와인, 그리고 휴식

캠핑장에 뛰노는 아이의 그림자가 거인처럼 커졌다. 서편 하늘에 감색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다. 아이스박스에서 오후 내내 차갑게 식혀놓았던 화이트 와인을 꺼내 코르크 마개를 땄다. 딸기와 앵두, 치즈를 바른 비스킷도 테이블에 올렸다. 와인을 따랐다. 투명한 와인 잔에 싱그러운 기운이 넘쳤다. 그 잔을 눈높이로 들었다. 잔속에 초록이 깊어지는 숲이 들어왔다. 잔을 좀 더 높이 들었다. 파란 하늘이 잔속으로 내려앉았다. 와인 속에 비친 세상, 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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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지리산에 기억을 묻다

[김산환의 캠핑폐인] 지리산에 기억을 묻다

이 산에 혼자다. 지리산 큰 품에 혼자 남았다. 황혼의 해는 철쭉능선 너머로 지고, 멀리 남원 시가지의 불빛이 아련하게 피어난다. 어디선가 소쩍새가 운다. 산비둘기도 구슬픈 울음을 토한다. 팔랑치에는 노을보다 붉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 위로 다시 핏빛의 석양이 쏟아진다. 바래봉만 오르면 마음이 푸근하다. 지리산에는 세석이나 돼지평전, 노고단, 만복대처럼 능선 위에 아늑한 초원이 많다. 그래서 후덕한 산으로 칭송을 받는다. 그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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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비처럼 울고 싶은 날에

[김산환의 캠핑폐인] 비처럼 울고 싶은 날에

당김줄을 힘껏 당긴다. 텐트의 플라이가 탱탱하게 펴진다. 모서리의 팩도 뽑아 한 뼘쯤 뒤로 당겨 박는다. 늘어지는 것은 싫다. 비를 맞고 플라이가 축 처지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인생이 반환점을 돌 무렵, 내 몸 어딘가에 주름이 늘기 시작했다. 뱃살은 처지고, 턱은 두겹으로 겹쳐졌다. 눈자위에도 그늘이 드리웠다. 어디 처진 것이 몸뿐이랴. 탄력을 일은 것이 피부뿐이랴. 단 한 번도 세상의 주인이지 못했던, 단 한 번도 세상을 향해 당당히 외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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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인연, 물안개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김산환의 캠핑폐인] 인연, 물안개처럼 밀려오는 그리움

근화동 선착장을 출발한 철부선이 느리게 호수를 가로질렀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물결은 비단결처럼 잔잔했다. 물비린내가 훅 끼쳤다. 춘천 시가지가 점점 멀어졌다. 그와는 반대로 호수에 뜬 섬 중도가 천천히 다가왔다. 오늘 하루 쉬어갈 섬이다. 언제부턴가 북한강가에 접한 이 조용한 도시를 ‘호반의 도시’라 부르고 있다. 늦가을이나 초봄, 밤낮의 일교차가 큰 날이면 어김없이 이 호숫가의 도시는 물안개를 피워 올린다. 그 자욱하게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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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무릉도원에서의 하룻밤

[김산환의 캠핑폐인] 무릉도원에서의 하룻밤

저녁놀이 복사꽃밭에 드리웠다. 복사꽃은 그 노을을 받아 한껏 뺨이 붉어졌다. 봄이 무르익은 느낌이다. 눈길을 조금만 돌렸다가 되돌려도 세상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그새 민들레 홀씨는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다. 복사꽃 꽃망울 하나가 살포시 꽃잎을 열고 수술을 드러냈다. 벌 한 마리가 급한 날갯짓으로 배꽃으로 날아갔다. 세상이 그림 속 풍경처럼 정지된 것 같았지만 자연계의 순환은 바쁘게 시간을 따라 움직였다.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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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환의 캠핑폐인] 흘러간다

[김산환의 캠핑폐인] 흘러간다

흘러간다. 강물이 흘러간다. 갈퀴 같은 나뭇가지를 빠져나온 바람이 흘러간다.. 산마루에 어기영차 뜬 달이 천공을 가르며 흘러간다. 그 뒤를 따라 은하수가 우르르 몰려간다. 세상의 모든 것들 흘러가고, 또 흘 러 간 다. 흘러간다. 세월이 간다. 정동길을 함께 거닐던 사랑이 지나간다. 꽃피는 봄날도 이마에 핀 주름도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그저 흘러간다. 사람으로 와서 흙이 되고 흙으로 머물다 다시 바람을 타고 낯선 땅에 먼지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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