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DIY 캠퍼라 부르기로 했다. 그의 캠핑장비는 첫눈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유명 메이커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대부분 ‘남대문표’였다. 어떤 장비는 한 번도 같은 브랜드를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자잘한 장비들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가져온 듯 했다. 그것도 대부분 빛이 바래고 낡았다. 오래 사용할수록 사용감이 돋보이는 명품이나 캠퍼의 경력을 말해주는 그런 빈티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DIY 캠퍼는 사이트도 독특한 방식으로 꾸렸다. 그는 텐트 두 동을 결합해 침실과 리빙쉘을 만들었다. 보통 리빙쉘은 전용 텐트를 사용하지만 그는 낡은 캐빈형 텐트를 이용했다. 그것은 창의성보다는 임기응변에 가까웠다. 어디서도 그런 텐트의 조합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야전침대와 테이블을 야외에 놓았는데, 테이블의 상판이 원목이라 눈길을 끌었다. 보통 원목을 이용해 만든 테이블은 아주 비싸다. 그러나 테이블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원목이 아니었다. 원목 무늬의 장판을 합판에 씌워서 만든 자작품이었다. 그를 DIY 캠퍼라 부르기로 한 것은 그 테이블을 확인한 후였다.
참 독특한 스타일의 캠퍼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와는 특별히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야전침대에 누워 자다가 생각난 듯이 캠핑장을 한 바퀴 돌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거나, 캠핑의 낭만을 즐기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곳이 집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기실 주말의 캠핑장에서라면 그를 그렇게까지 주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캠핑을 간 것은 주중이었고, 캠핑장에는 그와 우리 텐트 두 동이 전부였다. 당연히 그에게 신경이 쓰였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때 산책에서 돌아온 그가 텐트 앞을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나면 은연중에 친밀감을 갖게 되는 게 캠핑장이다. 나는 그 정도의 친밀도를 표시하려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장비 참견을 하며 말을 건넸다.

난감했다. 나는 누군가 나의 장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캠핑장비는 20여년 가까이 써온 것들이라 낡았다. 요즘처럼 오토캠핑에 맞게 편리성을 갖춘 장비도 드물다. 또 캠퍼들이 이름만 들어도 몸살을 앓는 그런 류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다만, 20여년을 한 몸이 되어준 나의 장비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반응을 보이자 반색을 하며 말을 걸어오는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그는 커피를 홀짝이며 자신의 캠핑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경력이 풍부한 캠퍼라고 말했다. 지금도 집에서 자는 것보다 텐트에서 자는 것이 좋아 일부러 캠핑장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름만 되면 누구나 아는 산악인과 자기가 함께 캠핑을 한 적도 많다고 했다. 겨울에는 승합차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카를 이용해 오토캠핑을 즐긴다고도 했다.
그의 말에는 허풍이 많았다. 그의 캠핑 예찬론도 전혀 연륜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구석도 노련한 캠퍼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이미 그가 쓰는 캠핑 장비가 어떤 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가 겨울에 즐겨 이용한다는 캠핑카가 사실은 승합차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게 고작이란 것도 알고 있다. 어디까지 들어주어야 할까. 나는 그가 적당히 마치고 자신의 텐트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의 말을 가로막지 못했다.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는 그에게서 어떤 간절함 같은 걸 느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제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하는 듯 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캠핑예찬은 핑계이고, 진정으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 듯 한 눈치였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진 절망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가 자주 산책을 나섰던 것은 나의 동정을 살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무엇일까. 그가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속사정은 무엇일까. 나는 그가 무슨 말이든 계속 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가 스스로 속내를 털어놓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했다. 그는 말문이 막혀 머뭇거릴 때도 캠핑에서 화제를 돌리지 못했다. 나는 기회를 보다가 살짝 물어봤다.
혹시, 하시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다 하세요. 제가 들어드리지요.
이야기요?…… 없어요.
대답을 마친 그는 말을 잊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강 건너 절벽을 바라봤다. 한참을 그렇게 먼 곳을 응시하다가 말문을 열었다.
참……사는 게…….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가 커피를 마시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반짝했다. 나는 모른 척 했다.
그의 커피 잔이 비었다. 나는 꼭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를 들어 그의 커피 잔을 채워줬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텐트 친 것 보니까 연륜이 대단하시네요.
DIY 캠퍼는 오후에 떠났다. 그가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치워졌다. 그가 온종일 누워 있던 야전침대도, 원목 무늬 장판을 합판에 붙여 만든 테이블도, 빛바랜 남대문표 텐트도 없었다. 다만 텐트가 있던 자리만 뽀송뽀송 말라 있을 뿐이었다.
세상의 남자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때로는 혼자 그 비밀을 지고 가는 것이 죽을 만큼 힘겹기도 하다. 그러나 남자라는 이유로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못한다. 아파도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가슴 속 응어리진 절망이 자신을 나락으로 등 떠밀어도 속으로만 삭이려 한다. 그게 남자라고 믿는다. 그것이 승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수컷의 운명이라 여긴다. 자신이 얼마나 위로에 굶주렸는지,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친구를 얼마나 애타게 찾고 있는지 알면서도 남자는 차마 힘들다 말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