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1월 31일 프랑스 일간지 '르 마탱'은 운전자들에게 ‘자동차로 북경에서 파리까지 갈 준비가 된 자동차와 인간은 누구인가?’ 라는 도전장을 내 놓는다. 16,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경주는 ‘자동차가 결코 감당하지 못 할 가장 큰 시험’으로 인전됐다.

이 계획은 단번에 <돈 스키피오네 루이지 마르칸 토니오 프란체스코 로돌프 보르게제> 왕자를 열광시킨다. 그는 이탈리아 왕국로 북경에 잇는 그의 동생 돈 리비오를 방문하게 되어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자동차광으로 당장에 계획을 바꾸고 이 경주에 도전하기 위해 마침 선전용 이벤트를 찾고 있던 이탈라자동차 회사에 요청했다. 이탈라는 왕자의 요청을 쾌히 승락했다.
이탈라 29/50은 배기량이 7리터가 넘는 4기통 엔진을 앞에 얹고 의자 두 개와 세 번째 의자 사이에 150리터를 담을 수 있는 거대한 두 개의 연료 탱크가 놓여있었다. 4단 기어에 밀라노의 피렐리 타이어를 달고 있었다.

이 모험에 이탈라, 드 디옹 부통 두 대, 네덜란드에서 제조된 스파이커 한 대, 콘티넨탈 회사의 삼륜차 한 대 등 총 다섯 팀만이 확정됐다. 1907년 6월 10일 북경에서 레이스가 시작됐다. 8월 10일, 그러니까 북경을 떠난 지 두 달 만에 16,000km를 달린 뒤 이탈라는 무사히 파리에 1등으로 도착해 역사 최초로 지구 반 바퀴를 주파한 위대한 자동차로 명성을 얻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