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4년전 오늘의 자동차가 발명되어 인간이 실용하자 빠른 자동차를 갈구하게 됐다. 그래서 19세기말부터 자동차로 속도기록을 세우려는 용감한 사나이들이 나타낫다. 최초의 자동차들은 아무리 빨라야 최고시속 35km를 넘지 못했다.

1899년 프랑스에 살던 젤지움 자동차광인 카밀 즈나치(Camille Jenatzy)는 '라 자매 콩탠(La Jamais Cobtente: 결코 만족을 모르는 차' 라는 탄환형 전기자동차를 몰고 시속 105.904km를 기록 시속 100km의벽을 돌파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자동차로 시속 100km이상 달리면 폐가 터져 죽는다는 미신이 유행했다. 지나치는 폐가 터지지 않고 살아남은 초인으로 프랑스 사람들의 영웅이 됐다. 자동차에 미쳐 집안을 돌보지않는 남편이 지겨워 이혼하려던 즈나치의 부인도 세계최고 기록을 올린 남편을 끌어 안고 비바 카멜을 외치며 그후 다시는 이혼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이때까지는 전기자동차가 기록을 세웠지만 곧이어 증기엔진 자동차의 도전을 받았다. 프랑스의 증기자동차 메이커인 레옹 셀포레(Leon Serpollet)가 1902년 니스에서 시속 120km를 돌파하자 같은해에 미국의 신문왕에 백만장자인 밴더빌트가 프랑스 차인 몰스(Mers)로 도전 123km를 올려 셀포레의 기록을 깼다 몰스는 속도기록에 도전한 최초의 휘발유 차였다.
속도기록경기는 프랑스에 이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헨리 포드는 앞으로 만들 포드차의 주가를 높히고 널리 선전하는 방법의 하나로 1902년 4기통 72마력짜리 포드 에로우(Foed Arrow)를 만들어 다음해인 1903년 디트로이트근방 얼어붙은 세인트 클레어 호수바다에서 147km를 기록했다.

1920년대초까지 미국에서 증기자동차가 돌아다녔다. 포드의 기록에 도전한 것이 당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스텐리 증기차였다. 스텐리 증기차 메이커인 로코모빌회사는 스텐리 로캣(Stanley Rocket)이라는 120짜리 보트형 증기차로 데이토나비치에서 시속 195.6km를 기록 200km에 육박했지만 주차기리가 규정치보다 짧아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스텐리 로켓릐 드라이버인 마리오는 시속 260km 에도 도전하기위해서 첫 기록을 수립했던1906년 가을 역시 데이토나비치에서 도전하다가 작은 바위를 들여받고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떨이지면서 산산히 부서저 끝나고 말았다. 이것이 증기차 도전의 마지막이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