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F1] 게이머는 레이서가 될 수 있을까?

[inside F1] 게이머는 레이서가 될 수 있을까?

발행일 2015-05-07 07:04:20 윤재수 칼럼리스트

 

“게이머에서 레이서로”

 

이 문구는 7년 전부터 소니, 닛산 등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 ‘GT 아카데미’의 홍보문구 중 하나다. 게이머 중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을 선발해 프로를 만드는 육성 프로젝트다. 프로 게이머가 아니라 진짜 차를 모는 드라이버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다.

 

▲ 2015 GT 아카데미의 광고

 

가상에서 현실로

 

게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상현실의 세계가 좀 더 구체화될수록 게임 속의 환경은 현실과 닮아간다. 가상현실이 실상과 가까워질수록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실제는 차에 올라 경험을 쌓으며 프로 드라이버가 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하면, 가상현실을 이용해 드라이버를 육성한다는 GT 아카데미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GT 아카데미가 내걸고 있는 ‘가상에서 현실로’, ‘게이머에서 레이서로’, ‘새로운 길을 가라’ 등의 표어들은 모두 실제 모터스포츠 세계와는 별 관계가 없던 게이머가 프로 드라이버가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이머의 이미지와 오랫동안 고된 훈련과 경험으로 완성된 운동 선수인 프로 드라이버 사이에 괴리가 컸기 때문이다.

 

가상현실과 실제 세계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도 문제였다. 처음 GT 아카데미 프로젝트가 발표되던 7년 전만 해도 프로 레이싱 팀이 시뮬레이터를 적극 도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가상현실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 현실과 차이가 큰 만큼 가상현실에서 아무리 좋은 기량을 보여주더라도 실제 차량에 올랐을 때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도 많았다.

▲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는 GT 아카데미 졸업생들

 

게임 경험이 실전에서 통할까?

 

게임 속에서 가상으로 경험한 드라이빙과 그 속에서 생겨난 기량이 현실에서 통할 것인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GT 아카데미에서 선발된 드라이버들은 제공된 프로그램을 마친 뒤 준프로 레이스 이벤트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뒀고, 곧 예정됐던 내구 레이스의 드라이버로 투입됐다.

 

투어링카로 좋은 성적을 거둔 GT 아카데미 졸업자들은 르망 24시간 LMP2 클래스에 출전할 기회를 얻었고, 1회 GT 아카데미 우승자였던 루카 오도네즈는 2011년 2위로 르망의 포디엄에 올랐다. 2012 두바이 24시간에는 사상 처음으로 ‘올-게이머’ 팀이 구성되기도 했는데, 오도네즈가 이끄는 GT 아카데미 졸업자들의 팀은 3위로 포디엄 피니시에 성공했다.

 

게임에서 성장한 드라이버들의 성공은 기대 이상이었다. GT 아카데미의 졸업자들은 투입되는 무대마다 상위권에서 경쟁했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준프로 무대를 제공하던 일부 레이스에서는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출전을 제한하기도 했다. GT 아카데미의 의도대로 게이머는 현실 세계의 드라이버가 될 수 있었고, 그냥 참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 게임 같은 환경을 만드는 F1 시뮬레이터

 

F1과 게임의 연결 고리

 

가상현실과 실제 모터스포츠의 세계가 점점 하나로 묶여가고 있는 추세는 F1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F1 팀의 시뮬레이터는 그다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거의 게임 환경과 유사한 시뮬레이터의 경험이 실제 트랙을 달릴 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때문에 팀 마다 시뮬레이터에 대한 투자에 많은 차이가 생겼고, 각 팀이 가진 노하우의 격차도 커졌다.

 

10년 전의 상황과 다르게 최근 몇 년 간 F1 팀에서 시뮬레이터의 위상은 매우 높아졌다. 실제 차량의 테스트가 극도로 제한돼있기 때문에 시뮬레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시뮬레이터 자체의 성능도 매우 좋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 생긴 트랙에 나설 때도 적응에 큰 무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시뮬레이터를 잘 갖추면 비용 절감 효과도 상당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F1 팀들이 활용하는 시뮬레이터 중 다수가 레이싱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F1 시뮬레이터는 일반 게임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직접 게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게임 속 가상현실이 구현한 세계가 갈수록 실제 세계와 비슷해지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시뮬레이터의 비중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최근 대형 F1 팀에는 기존 테스트/리저브 드라이버나 개발 드라이버 외에 ‘시뮬레이터 드라이버’라는 새로운 자리가 생겼다. 전문적으로 가상 현실 속에서 테스트를 전담하는 드라이버다. 시뮬레이터로 실제 레이스를 위한 준비를 하는 전문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마치 GT 아카데미의 업그레이드 버전처럼 들린다. 대세가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포뮬러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얀 마덴보로

 

게이머가 F1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까?

 

게이머가 프로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GT 아카데미 졸업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증명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모터스포츠 최고의 무대인 F1에도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일단 지금 당장은 요원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다. WEC 참전을 선언한 닛산의 행보에 따라 그 시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벌써부터 4~5년 내에 게이머 출신 F1 드라이버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GT 아카데미의 주최 측 중 하나인 닛산은 꾸준히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들을 상위권 프로 무대에 진출시켜 왔는데, 올 시즌 또 하나의 큰 목표를 내세웠다. 바로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르망 24시간의 최상위 LMP1 클래스에 신형 차량을 투입하면서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를 다수 출전시킨다는 것이다. LMP2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지만, 과연 세계 최정상의 드라이버들이 경쟁하는 LMP1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GT 아카데미 출신 드라이버 중 떠오르는 별인 얀 마덴보로는 F1에 가장 근접한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다. 1991년 영국에서 태어난 얀 마덴보로는 2011 GT 아카데미에서 9만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뒤, 2012 두바이 24시간의 SP2 클래스 3위를 거둔 게이머 팀에 참가했고, 2013년에는 르망 24시간 LMP2 클래스에서 루카 오도네즈와 함께 3위로 포디엄에 올랐다. 2014년에는 GP3와 토요타 레이싱 시리즈에 출전해 오픈 휠 레이스에 발을 들여놨는데, GP3 데뷔 첫 해 우승 한 차례를 포함해 포디엄 피니시 2회, 패스티스트랩 2회를 기록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만약 얀 마덴보로가 닛산의 LMP1 팀 소속으로 르망 24시간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F1 팀들의 눈에 들 것이 분명하다. 이번 르망 24시간에는 다수의 F1 출신 드라이버가 참가하는 것은 물론 니코 훌켄버그 등 현역 F1 드라이버의 참가도 예정돼 있다. 게이머 출신 드라이버라는 딱지는 보수적인 F1 팀의 수뇌부에게 그리 아름답게 보이는 이력은 아니지만, 최고 수준의 경험 많은 드라이버들과 맞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게이머 출신 F1 드라이버의 탄생’이 생각보다 앞당겨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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