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탄생은 아도서비스라는 일제시대 말의 정비공장이 바로 그 뿌리이다. 1940년대 초 서울에 있던 아도서비스(Art Service)와 정주영씨의 인연이 현대자동차를 세우게 된 동기라 한다. 가난이 싫어서 돈벌어 잘 살아 보겠다는 대망을 품고 강원도 북쪽 산골에서 서울로 올라 온 청년 정주영은 막노동 등 1년여 간의 고생 끝에 서울 신당동에 있던 쌀가게에 취직하여 자리를 잡고 열심히 일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신용을 인생철학으로 삼아 일한 덕택으로 쌀가게를 인수받아 어였한 사업가로 출발했다. 정주영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은 것은 쌀가게 주인이 되면서 부터였다. 그는 트럭을 한 대 구입 농촌으로 다니면서 직접 쌀을 구입해 와서는 도매도 겸했다.
그런데 잘 되어가던 가게는 장사한 지 2년 째 되던 1939년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군수품 비축을 위해 국내의 경제를 통제하기 시작 쌀의 자유판매를 금지하고 배급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가게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정주영은 그냥 주저앉을 수 없었다. 일본의 통제를 받지 않는 사업을 찾다가 어느 날 자기 트럭을 단골로 정비해 주던 정비사 이을학씨를 만나 길을 찾게 됐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컸던 정비업체인 ‘경성모터스’에서 일하던 이씨의 권유로 서울 북 아현동에 있던 ‘아도서비스’라는 조그만 정비공장을 1940년 그의 나이 25세 때 당시 돈으로 3천5백 원을 주고 인수하면서 자동차정비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인수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공장은 정주영의 열성과 신용 때문에 일거리가 쏟아져 들어와 당장에 흑자로 올라 개업 20일 만에 친구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모자라서 빌린 돈의 절반과 인수 잔금을 갚을 만큼 잘 되어 나갔다.

그런대 돈을 갚고 난 5일 후인 새벽에 밤새도록 일을 하고 난 한 공원이 기름투성이 손을 씻기 위해 시너로 불을 지펴 물을 데우다가 그만 잘못해 불이 나고 말았다. 불은 것 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번져 공장은 물론 수리하던 트럭 3대와 순정효 황후의 숙부였던 윤덕영씨의 자가용인 미국차 올즈모빌 등 4대를 몽땅 태우고 공장 밖 길거리에서 수리하던 트럭 두 대도 반이나 타버렸다.
정주영은 눈앞이 캄캄했다. 공장재건보다 타버린 자동차를 배상해 줄 돈이 부족했다. 생각다 못한 정 사장은 거래했던 고리대금업자를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평소에 정사장의 신용과 사람됨을 믿던 고리대금업자는 1천원을 빌려주었다. 겨우 타버린 자동차를 배상했으나 공장을 다시 세울 돈이 없었다.
그러나 정비업의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천성인 배짱과 투지력이 다시 발동했다. 비장한 각오로 맨주먹 하나 쥐고 장소를 찾아 며칠 해매다가 신설동 뒷골목에서 조그만 빈 공터를 빌릴 수 있었다. 이곳에다가 겨우 자동차 앞머리만 들여놓고 엔진을 수리할 수 있는 닭장만한 목조공장을 짓고 무허가 정비업을 시작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