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 매달렸던 철도자동차영업이 태동한 것은 경부선이 개통되고 호남선과 경원선을 시공하던 1906년이었다. 경성 경무청의 고급간부 출신인 권병수와 구연소가 경원선 미 부설구간에 자동차를 투입하여 철로 부설구간까지 수송한 기차의 화객을 받아 싣고 원산까지 연계하겠다는 자동차영업이었지만 미 부설구간의 자동차도로를 업자의 자비로 닦아 운행하라는 철도국의 조건에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국가의 간선도로는 정부가 닦아주는 것이 원칙인데, 그 험한 태백준령을 뚫는 도로를 사비로 닦으라니 어이없는 일이었다. 철도국 자동차가 처음 투입된 곳은 1916년 금강산이었다. 금강산 절경을 관광자원으로 돈을 벌기 위해 계획했던 철도국의 금강산을 관통하는 경원선 부설 계획이 난공사와 자금부족 때문에 수포로 돌아가자 1914년 개통했던 경원선의 평강역과 원산역에서 내금강까지 자동차도로 두 노선을 각각 닦아 8인승 관광 승합차를 두 대씩 투입했다.

민간업자로 처음 철도자동차를 개업한 것은 1912년말 이었다. 이때 대구에서 자전거장사로 돈을 벌었던 오쯔카라는 일본인이 대구~경주~포항간에 철도가 없음을 기회로 명승고적지인 경주를 찾는 관광객과 포항간의 교통편의를 위해 정기운행노선 허가를 받고 8인승 포드 두 대를 투입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손님이 차야만 출발을 하였고 대구역에서 손님을 태우고 포항까지 가는데 무려 9시간이 걸렸다. 그 후 1919년에 대구-경주 간에 철도가 개통되어 경주역에도 철도 자동차들이 등장하여 철도자동차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철도교통 초기에는 철도국 자동차영업보다 민간인들의 영업이 더 왕성하게 각 지방 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1913년말 에는 경의선 평양역에서 진남포와 소금 명산지인 광양만을 잇는 철도자동차가 생겨 이 지방 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1950년대 말까지 전국의 도로가 발달되지 못하고 일제시대에 개설했던 미숙한 도로들이라 전국을 카버 할 수 있는 도로체계가 아니라서 기차에 의존하지 않고는 자동차교통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때까지 지방이나 도시나 할 것 없이 기차역 광장이 자동차의 터미널 역할을 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