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을 시발점으로 호남의 철도자동차영업은 활발하게 일어나 1920년경에는 40여개업체로 지방으로서는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따라서 업체간의 경쟁도 날이 갈수록 심했다. 그 중에서 가장 심했던 곳이 전주였다.

호남에서 제일 먼저인 1914년에 시작했던 전주의 야마모도 경영의 전주자동차부는 1919년 이곳 토착부호인 최종열, 승열 형제가 지방 민족세력을 동원 인수하고 공화자동차부로 이름을 바꾸고 한꺼번에 20여대의 신형 포드차를 들여와 계속 노선을 확장 1930년경에는 70여대의 버스를 운영하는 호남 최대의 운수업체로 발전했다. 1920년을 넘어서자 전주에만 유일의 민족운수업체인 최씨의 공화에 일인 업체들인 산본, 직거, 군산 등 6개 업체가 격심한 승객쟁탈전을 벌였다. 전주지방의 승객들은 대부분이 농민들이라 한농기인 겨울에는 기차승객이 많았으나 농사철에는 뜸했다. 최씨의 공화자동차부는 비수기의 불황을 타개하고 경쟁업체들을 재치기 위해 승객이 제 발로 버스를 찾아 타는 것이 아닌 전화예약 제도를 창안했다.

즉 집에서 승객이 전주역 기차를 타고 싶은 날자와 시간, 행선지를 공화자동차부에 연락하면 예약한 기차 출발 전에 버스가 직접 승객들의 집을 돌며 태워가지고는 역으로 와서 해당 기차를 탈 수 있도록 하는 `버스 문전 서비스`였다. 이렇게 편리하니 승객이 공화자동차부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질투한 일본 업체들과 공화자동차부 사이에는 한동안 몽둥이 분쟁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1916년에는 공화자동차부의 전신인 전주자동차부 창업자였던 야마모도의 때문에 김천에도 철도버스가 생겼다. 야마모도가 자동차영업을 시작하기 전 김천에서 경영하던 잡화상에 일본을 드나들며 잡화를 수입해 공급하던 시호지리가 야마모도의 권유에 따라 경북 북부의 경부선 교통요지인 김천에 버스영업을 벌리고 이곳 지방 부호인 신 모씨와 합자로 김천역~거창, 김천~상주~점촌노선을 허가 받아 경북내륙에도 일찍부터 철도자동차교통을 개통시켰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