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까지 서울 역은 남대문정거장으로 불렸고, 지금의 자리보다 서대문 쪽으로 약간 올라와 있었다. 역사도 허름한 단층의 목조 가옥이었지만 조선 수도의 관문답게 20년을 넘어서자 가장 승객이 많이 붐비는 역으로 변했다.
1922년, 서울 인구 30만 명에 남대문정거장을 드나드는 승객은 하루 평균 3천 명으로, 계속 폭증하는 기차 승객을 소화하고 대외적인 체면을 세우기 위해 1923년부터 지금의 서울 역 자리에 새로운 서양식 역사를 짓기 시작해 1925년에 완공하고 이름을 경성 역으로 바꾸었다.
당시로서는 광화문의 총독부 건물과 소공동의 조선호텔 다음 가는 이 나라 최대규모의 서양빌딩으로 그 웅대한 자태를 뽐냈으며 서울의 명물이 됐다. 이때 건축한 경성역사가 아직까지 서울 역으로 사용되고 있어 노년들로 하여금 추억을 더듬게 하고 있다.

1928년 서울에 시내버스가 처음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차가 대중교통의 주역이었고, 자동차는 하이야 또는 가시끼리로 밖에 없어 지금의 콜택시 역할을 했다. 외국이나 타지방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은 이 역을 통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서울 사람들의 표현대로 ‘와글거리는 역’ 일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경성역 광장은 20년대 초 서울시내 10여개 업체의 택시들이 눈만 뜨면 모여드는 공용 자동차터미널이 됐다. 택시보다 더 많은 인력거까지 합세하여 사람과 뒤섞여 난장판이었지만 그런대로 질서를 지켜 인력거는 역을 보고 왼쪽에, 자동차는 들어오는 순서대로 오른쪽에 줄을 서서 손님을 태웠다.
이렇게 서울의 택시나 인력거들은 기차로 먹고 살기 때문에 서로 좋은 자리 차지하기 경쟁에 새벽 동만 트면 아우성이었다. 여기다가 서울 인근 도시를 운행하는 승합차까지 가세하여 20년대 말까지는 서울역 광장이 조선 최대의 자동차 터미널 역할을 했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