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카 매니어들 중에는 진짜가 아닌 복제(replica)차를 찾는 이들이 많다. 오지널 클래식카가 탐나지만 차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성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복제차 전문회사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50년 이후 많이 생겨났지만 그중 가장 성공한 메이커가 63년에 설립한 엑스칼리버(Excalibur)이다.

부유한 미국의 부르크 스티븐스(Brooks Stevens)는 자동차광으로 2차 대전 직후부터 많은 클래식카를 수집해 박물관을 세웠다. 자신의 애장품을 팔라고 졸라대는 많은 친구들을 때문에 박물관을 세워 언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위해 레플리카를 만들어 주기로 결정했다. 위스콘신주 밀위키에 세워진 그의 클래식 레프리카 제작공장을 중세기 영국의 원탁 기사에 등장하는 신검의 이름을 따 엑스칼리버로 이름 지었다.
첫 작품은 그가 처음으로 소유한 클래식카인 1929년 형 벤츠를 복제한 레플리카였다. 그 후 이 회사를 물려받은 아들들은 옛 모델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오리지널을 능가하는 성능의 차를 만들고 싶었다. 64년 스티븐스는 엑사칼리버 공장을 확장하고 부품들을 250개의 부품생산업자에게 하청 주엇다. 70년대까지 엑스칼리버의 주 생산모델은 벤츠 SSK였다. 캐디락 3배 정도의 높은 값, 연간 생산 100대 정도였지만 매우 인가가 높았다. 스티븐스는 엑스칼리버에 시보레 코베트의 V8 엔진을 얹었고 독립현가 서스펜션과 파워 브레이크를 달아 성능을 높였다. 얼마 후 출력을 높이기 위해 시보레 트럭의 V8 7.4ℓ 215마력 엔진을 얹었다.

엑스칼리버의 성공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 이 70년대에 복고풍의 초호화차 제작에 뛰어들었다. 오번, 클레넷, 지머, 스터츠. 팬더 등으로 거의가 벤츠 아니면 30년대의 유럽차를 본 뜬 모델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엑스칼리버보다도 훨씬 비싼 값으로 팔았는데, 팬더 드빌의 경우 롤즈로이스보다 2만7천달러 비싼 9만2천달러였다. 하지만 얼마 못가 적당한 가격을 고수하던 엑스칼리버만이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엑스칼리버가 들어왔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