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석유파동으로 빛을 보기 시작했던 디젤 엔진 승용차가 우리나라에 80년대부터 보급됐다. 기어자동차의 콩코드디젤, 대우자동차의 로얄 디젤, 쌍용자동차의 코란도 지프와 훼미리, 아세아자동차의 록스타 그리고 현대정공의 갤로퍼 등이 그 주역들이다.
엔진소리가 크고 느린 것이 단점이지만 휘발유차보다 연료비가 싸고 엔진수명이 길며 견인력이 강해 우리나라 중대형 자동차는 전부 디젤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흔히들 휘발유 차는 스피드가 빠른 말에,. 디젤차는 힘이 강해 황소에 비유한다.

독일의 발명가였던 루돌프 디젤(Rudolph Diesel; 1858~1913)박사가 1894년에 발명한 디젤엔진은 휘발유엔진보다 높은 경제성과 열효율 때문에 19세기 말 공장은 물론 선박, 기차 등 교통수단의 동력으로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이 엔진이 발명된 초기에는 소음과 진동이 크고, 무거운 데다가 가속성이 나쁘기 때문에 자동차용 동력기관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낙인이 찍혔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석유파동의 영향으로 그동안 괄세받아 왔던 디젤승용차가 적극 개발되어 엔진 소음과 진동을 휘발유 차에 버금 갈 만큼 정숙해져 최고급 차라던 캐딜락과 벤츠도 디젤엔진을 얹을 만큼 경제형 엔진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인체에 해로운 매연을 만들어 낸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문제도 급속히 발달되어 가는 자동차 첨단기술로 해결해 가고 있는데, 디젤엔진이 오늘에 와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루돌프 디젤 박사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점철되어 있다.
자동차의 생명인 석유의 매장량이 서서히 바닥을 들어내고 있는데다가 최근에는 세계 최대 산유국인 중동의 이라크가 석유를 인질로 걸프전을 치룬 이후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원유가로 언제 또 제3의 석유파동이 일어날지 앞날을 점칠 수 없어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은 연료 경제형의 디젤엔진 차와 기타 대체연료 승용차 개발에 열을 올려, 90년대 초에는 일본과 프랑스에서 600cc급 경승용차까지 디젤엔진을 얹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발달된 자동차기술은 슈퍼차저 또는 터보차지라는 연소촉진장치, 전자식 직분사 시스템, 다중벨브, 등을 개발해 휘발유엔진 못지않은 조용함과 고출력으로 순발력이 빠른 디젤엔진을 만들어 과거의 단점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디젤엔진의 발명가 루돌프 디젤은 독일인이지만 파리에서 조그마한 가죽제품 공장을 경영하던 사업가 집안에서 1858년에 태어났다. 그가 12세 되던 해에 독불전쟁이 일어나 게르만민족을 싫어하던 프랑스의 반독운동 때문에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
영국에 도착한 지 두 달도 못되어 부모의 불화로 루돌프는 독일에 있는 삼촌에게 보내졌고, 그곳 왕실학교에 입학해 수학, 화학, 그리고 기계공학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장학생이 된다.
루돌프는 입학 첫날 과학실에서 강력한 공기압축력으로 불을 일으키는 공기압 불씨통을 발견하고 깊은 흥미를 갖는다. 이때부터 그는 장차 훌륭한 기술자가 될 것을 결심 한다. 17세 때 루돌프는 뮌헨에 있는 산업기술전문학교 장학생으로 입학, 이곳에서 제빙기계를 발명한 칼란드 박사를 만나 그의 지도로 복잡한 증기엔진 기술을 배운다.
루돌프는 당시 공장들이 동력으로 이용하던 증기엔진이 에너지의 낭비가 많으며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에너지 낭비가 전혀 없는 엔진을 발명하기 위해 열역학을 공부한다. 침식도 잊은 채 공부하다가 어느 때는 심한 열병에 걸려 생명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그 후 정신착란증을 얻게 되었고 그의 두뇌는 더욱 예민하고 날카로워진다.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루돌프는 칼린드 박사의 소개로 스위스에 있던 제빙기 제조회사에 입사해 실력을 인정받아 1년 만에 파리의 제2공장건설 책임자로 승진한다.
전영선 소장 kacime@kornet.net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