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F1] F1까지 번진 그리드 걸 퇴출 논란

[inside F1] F1까지 번진 그리드 걸 퇴출 논란

발행일 2015-04-09 10:08:05 윤재수 칼럼리스트

일산 KINTEX에서 서울 모터쇼가 시작된 4월 첫 주, 지구 반대편 파리에서는 FIA가 중요한 발표를 했다. 올해부터 WEC, 즉 세계 내구레이스 챔피언십에서 그리드 걸을 퇴출하겠다는 내용의 발표였다. 이 말은 단일 경기로는 세계 최대의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르망 24시간에도 그리드 걸이 나서지 않게 된다는 뜻이었다. 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 의미로’ 뜨거웠다.

F1 팬덤도 논란에 휩싸였다. FIA의 다음 행보가 F1일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매년 개선돼 왔고 올해는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전히 관점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리고 논란이 되는 국내 모터쇼의 레이싱 모델 문제에 대한 입장과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한다. 자동차와 여성 모델 사이의 애매한 관계는 이제 더 이상 쉬쉬하고 넘어갈 문제로 남겨두기 힘들게 됐다.

▲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WEC의 그리드 걸

먼저 칼을 빼 든 FIA

FIA가 주관하는 두 번째로 큰 모터스포츠 챔피언십 시리즈인 WEC는 2015시즌 개막전인 실버스톤 6시간 레이스부터 그리드에 ‘그리드 걸’을 세우지 않겠다고 공식 확인했다. 메이저 모터스포츠로는 처음으로 WEC가 그리드 걸 퇴출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한 셈이다. 수십 년 동안 당연히 여겨졌던 그리드 걸이라는 개념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FIA의 이번 조치는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서 여성들의 입지를 구세대의 그것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여론 및 내부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기존 그리드 걸은 자동차와 레이스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해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지적돼 왔다. 특히 잠재적 자동차 시장의 소비자인 여성 모터스포츠 팬이 갖게 될 수 있는 부정적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모터스포츠에선 그리드 걸, 일반 자동차의 홍보 면에서는 레이싱 모델이 성의 상품화 문제가 있다고 지적 받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이다. 이견의 대립이 상당히 강한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논쟁 속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에 대한 관점도 자연스럽게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남성 고객’ 혹은 ‘남성 관객’을 유혹하기 위해 여성의 외모와 육체를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칼을 빼드는가 하는 것이었다. 마치 술과 담배의 광고를 금지할 때의 상황 같은 느낌이다. 여성의 성 상품화가 문제긴 하지만 너무 깊게 뿌리내린 문제를 한 순간 잘못됐다고 금지시키는 것은 상당한 결단력을 요하는 문제였다. 자동차 산업과 모터스포츠의 중심에 다수의 여성이 진출한 현재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FIA가 칼을 빼든 것이다.

▲ 성의 상품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F1

아름답지 못한 F1의 과거

WEC에서의 그리드 걸 퇴출은 바로 F1 팬덤에 논쟁의 불을 지폈다. F1 팬들 중에는 즉각 F1 그랑프리에서 그리드 걸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강한 반면, 반대로 그리드 걸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주요 F1 매체의 칼럼니스트들도 하나 둘씩 그리드 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F1 챔피언십이 처음 시작된 1950년만 해도 그리드에 선 차량 앞에서 외모와 몸매를 내세운 여성 모델이 서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그리드 걸로 불리는 여성들은 F1에서 레이스가 펼쳐지기에 앞서, 그리고 포디엄 세리머니에서도 중요한 병풍 역할을 해왔다.

일부 몰지각한 사진 기자들은 차량과 레이스카는 아예 무시하고 그리드 걸만 프레임에 담기도 했다. 그리드 걸을 보라고 내세웠으니 그런 사람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65년의 역사 동안 단 다섯 명의 여성 드라이버에게만 기회를 줬던 F1은, 자신의 육체를 팔려는 그리드 걸에게는 넓은 문을 열어줘 왔다. 오래 동안 모터스포츠는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무대였고, 여성들은 언제나 들러리 취급을 받는 가운데 상품화된 여성의 육체만이 장식을 위해 활용된 것이다. 당연히 다방면에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시대 변화에 걸맞지 않게 F1이 여성을 다루는 방법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계속 그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단순한 사고와 남들도 다 그렇다는 무책임한 태도가 F1과 여성의 관계를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F1은 변화의 기로에 놓였다. F1을 주관하는 FIA가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이상, F1의 바람직하지 못했던 과거의 관행은 수술대에 오를 날만 기다리게 됐다.

▲ 버니의 여성 F1 제안은 논란만 불러 일으켰다.

여성만의 F1, 가능할까?

최근 F1에는 여성의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 열 팀의 F1 팀 중 두 팀을 여성이 대표자격으로 이끌고 있다. F1 팀에 많은 여성이 합류했고 미캐닉과 엔지니어 중에 여성의 비중도 늘고 있다. 수지 울프를 비롯해 카르멘 호르다, 시모나 이 실베스트로, 그리고 고 마리아 데 비요타까지 네 명의 여성이 지난 3년 사이 F1 레이스카를 몰았다. FIA가 추구하는 방향 그대로 F1에서 여성의 역할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여성 F1 드라이버의 배출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여성이 더 이상 남성 드라이버의 장식품이 아니고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위해서도 여성 F1 드라이버는 꼭 필요하다. 문제는 애초에 팜이 작은 여성 드라이버 중 탑 클래스에 근접한 여성 드라이버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적은 수의 여성에게 돌아가는 기회가 제법 많더라도 결국 많은 남성 속에서 여성 F1 드라이버가 탄생할 가능성은 매우 작을 수밖에 없다.

F1의 지배자 버니 에클스톤은 지난 말레이지아 그랑프리에서 여성 드라이버만 참가하는 F1 레이스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이 아이디어는 카르멘 호르다 등 일부 여성에게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수지 울프 등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여성도 많았다. 대회의 창설 가능성을 뒤로 하고라도 과연 F1의 하위 대회격인 여성 전용 대회가 열리는 것이 여성의 비중을 높이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

분명한 것은 당장 여성 F1 레이스 등 갑작스런 해법이 나오지 않더라도, 여성이 더 이상 제3자로 취급 받지는 않게 하겠다는 생각에는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FIA가 그리드 걸 퇴출의 결단을 보였고, 구시대의 대표자격인 버니 에클스톤마저 여성에게 기회를 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많은 발전이 이뤄지긴 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더 멀다.

▲ F1 그리드 걸은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게 될까?

좋든 싫든 시대는 변했다

과연 그리드 걸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악습인가라는 문제만으로도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국가마다 사회마다, 조직과 문화마다 성과 성 역할에 대해서 100% 뚜렷하고 확실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자동차 문화 속에 여성의 역할을 새기는 일은 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모터스포츠의 정점에 선 F1은 유독 시대의 변화에 뒤쳐지는 일이 많은 스포츠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렵다. 좋든 싫든 자동차와 여성의 관계는 과거와 달라졌다. 이제 여성은 F1은 물론 모든 자동차 문화에서 주요 고객이자 주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성을 F1 레이스카와 드라이버의 병풍이자 장식품으로 삼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이미 WEC에서는 그리드 걸의 퇴출이 결정됐고, 다음 순서는 F1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꼭 바로 다음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F1에서 그리드 걸은 사라질 것이다. 많은 자본을 공급해서 F1을 먹여 살렸고, 그 자체로 멋있는데다가 홍보와 마케팅의 핵심이었던 술과 담배 광고가 금지됐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드 걸, 혹은 레이싱 모델이란 개념은 한 순간 사라져버리지는 않겠지만, F1을 비롯해 모터스포츠가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점차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300
[시승기] 쏘렌토 하이브리드, 5천만원에 모든 것을 담았다

[시승기] 쏘렌토 하이브리드, 5천만원에 모든 것을 담았다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2WD를 시승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적당한 크기와 실내공간, 상품성에 하이브리드를 통한 경제성까지 더해져 국민 SUV로 자리매김 했다. 매년 꾸준히 오르는 가격으로 인해 저항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5천만원 미만에서 구입 가능한 최적의 선택지다. 기아 쏘렌토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SUV다. 현행 모델은 4세대 쏘렌토 부분변경(MQ4 PE) 모델로 2023년 8월 출시됐다. 전후면 램프류 디자인을 변경하고, ccNC와 OTA, 파

국산차 시승기이한승 기자
[시승기] 카니발 하이브리드, 대형 SUV 위협하는 상품성

[시승기] 카니발 하이브리드, 대형 SUV 위협하는 상품성

기아 카니발 하이브리드 9인승을 시승했다. 카니발 하이브리드는 연비와 정숙성을 함께 만족하는 모델로,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인기가 좋아 카니발 디젤의 단종을 앞당긴 것으로 평가된다. SUV를 선호하는 트렌드와 대형 SUV가 관심을 받고 있지만, 다인승 이동시 편의성은 독보적이다. 기아는 카니발 부분변경(KA4 PE)을 지난 2023년 11월, 하이브리드는 12월 출시했다. 사전계약에서 90%의 고객이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며, 출고 대기가 1년을 넘어서기도 했

국산차 시승기이한승 기자
제네시스 G90 쿠페 양산되나, 엑스 그란쿠페 콘셉트

제네시스 G90 쿠페 양산되나, 엑스 그란쿠페 콘셉트

제네시스가 G90 쿠페, 엑스 그란쿠페 콘셉트(X Gran coupe concept)의 실차 이미지와 영상을 추가로 공개해 주목된다. 이탈리아 동부 마르케 지역에서 촬영된 이번 콘텐츠를 통해 엑스 그란 쿠페가 단순히 목업 차량이 아닌, 실제로 구동계가 탑재된 실차임을 보여줘, 양산 가능성을 높였다. 제네시스 브랜드는 2015년 11월 브랜드 론칭시 예고한 6개 모델 라인업에 '니어 럭셔리 스포츠 쿠페'를 포함하는 등 쿠페형 모델 출시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이후 2016년

신차소식이한승 기자
닛산 신형 실피 공개, 과감한 전면부 디자인..아반떼급 세단

닛산 신형 실피 공개, 과감한 전면부 디자인..아반떼급 세단

닛산은 신형 실피(SYLPHY) 외관 디자인을 12일 공개했다. 신형 실피는 부분변경으로 전면부를 가로지르는 풀사이즈 LED 라이트바와 독특하게 디자인된 주간주행등 등 과감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신형 실피는 내년 중국에 출시되며, 미국에서는 센트라로 판매된다. 실피는 닛산의 준중형 세단이다. 신형 실피는 4세대 부분변경으로 2026년 1분기 중국 시장에 투입된다. 실피는 미국에서 센트라로 판매되는데, 현대차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기아 K4, 혼다 시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AMG E53 에스테이트, 미국서 가장 저렴한 퍼포먼스 왜건

AMG E53 에스테이트, 미국서 가장 저렴한 퍼포먼스 왜건

메르세데스-AMG는 12일 AMG E53 에스테이트(Estate) 가격을 미국서 공개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E53 에스테이트는 신형 E클래스 에스테이트의 고성능 버전으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해 총 출력 612마력을 발휘하며, 가격은 9만4500달러(약 1억3000만원)다. E53 에스테이트는 신형 E클래스 에스테이트의 고성능 버전이다. 국내에는 E53 세단이 출시됐는데, 에스테이트 출시는 미정이다. E53 에스테이트의 미국 가격은 9만4500달러(약 1억3000만원)로 BMW M5 투어링, 아

업계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토요타 랜드크루저 랠리 에디션 공개, 오프로드 스포츠카

토요타 랜드크루저 랠리 에디션 공개, 오프로드 스포츠카

토요타는 랜드크루저 GR 스포츠 랠리 에디션(Rally Raid Edition)을 11일 공개했다. 랜드크루저 GR 스포츠 랠리 에디션은 튜닝된 전용 서스펜션과 전용 휠 등을 탑재해 오프로드 성능이 강화됐다. 트윈 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했다. 국내 출시는 미정이다. 랜드크루저 GR 스포츠 랠리 에디션은 랜드크루저 팀이 다카르 랠리 양산차 부문에서 1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 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스페셜 모델이다. 랜드크루저 GR 스포츠 랠리 에디션은 일본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
[시승기]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 퍼포먼스와 사운드 매력적

[시승기]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 퍼포먼스와 사운드 매력적

볼보 EX30 크로스컨트리를 시승했다. EX30 크로스컨트리는 EX30을 기반으로 오프로더 스타일의 차별화된 외관 디자인과 19mm 높아진 지상고를 통해 전통적인 볼보의 크로스컨트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428마력 듀얼 전기모터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1040W 사운드 장비는 주목된다. 볼보코리아는 지난 4일 크로스컨트리 최초의 전기차 EX30 크로스컨트리를 출시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크로스컨트리(Cross Country)는 볼보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라인업으로, 스

수입차 시승기이한승 기자
그랑 콜레오스 2026년형 살펴보니, 선루프로 개방감 높였다

그랑 콜레오스 2026년형 살펴보니, 선루프로 개방감 높였다

르노코리아가 2026년형 그랑 콜레오스를 선보였다. 2026년형 그랑 콜레오스는 파노라마 선루프를 도입하고, 퓨어 화이트 그레이 인테리어가 추가됐다. 새로운 인포테인먼트 기능과 신규 내외장 컬러, 아웃도어 감성의 스페셜 에디션 에스카파드(escapade)를 함께 출시한 점이 특징이다. 2026년형 그랑 콜레오스는 고객 요구 사항을 반영해 openR(오픈알) 파노라마 스크린 바탕화면 내 공조장치 위젯 추가 등 UI를 개선했다. 동승자는 20가지 캐주얼 게임이 포

차vs차 비교해보니이한승 기자
맥라렌 750S JC96 에디션 공개, 도로용 레이스카

맥라렌 750S JC96 에디션 공개, 도로용 레이스카

맥라렌은 750S JC96 에디션을 11일 공개했다. 750S JC96 에디션은 일본에서만 판매되는 한정판 모델로 타이거 스프라이프 디자인을 특징으로 MSO 750S 전용 다운포스 키트(HDK)를 통해 트랙 주행에 최적화된 것이 특징이다. 750S JC96 에디션은 61대만 한정 생산된다. 750S JC96 에디션은 1996년 일본 그랜드 투어링카 챔피언십(JGTC)에서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한 맥라렌 F1 GTR에 경의를 표현하는 스페셜 모델이다. 750S JC96 에디션은 쿠페와 스파이더로 운영되는데, 199

신차소식탑라이더 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