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 휴가 기간을 지나 시즌 후반기의 시작을 앞두고 있던 F1 패독에 큰 뉴스가 들려왔다. 2014년 8월 18일 토로로쏘는 공식적으로 2015시즌부터 네덜란드 출신의 막스 베르스타펜이 다닐 크비앗의 팀메이트로 F1에 데뷔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세 시즌 동안 팀과 함께했던 장-에릭 베뉴가 팀을 떠나게 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루키의 탄생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 시즌 크비앗이 데뷔를 앞두고 연습 주행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고 공식 발표가 시즌 종반에야 이뤄졌던 것을 생각하면, 예년보다 이른 시점에 루키의 데뷔를 예고한 것이 이채롭다.
더욱 놀라운 점은 막스 베르스타펜의 나이다. 1997년 9월 30일에 태어난 막스 베르스타펜은 아직 만 16세의 소년으로, 내년 F1 개막전에서 데뷔를 하는 시점이 되어도 17세 6개월에 불과한 매우 어린 나이다. 당연히 F1 그랑프리에서 레이스에 참가한 최연소 드라이버의 기록이 갱신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어린 드라이버가 수퍼 라이센스를 받고 F1 그랑프리에 참가해도 되는 것인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막스 베르스타펜은 어떤 드라이버이고 레드불과 토로로쏘는 어째서 어린 소년에게 F1 시트를 맡기는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2014년 8월 12일 레드불이 자신들의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인 레드불 주니어 팀에 합류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막스 베르스타펜이 일반 F1 팬들의 큰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현재 F1에서 활약 중인 다니엘 리카도, 장-에릭 베뉴, 다닐 크비앗 등이 모두 레드불 주니어팀 출신이고, 멀리 보면 세바스찬 베텔 역시 레드불 주니어 팀을 통해 F1 데뷔를 준비한 셈이다. 현재도 두 명의 포뮬러 르노 3.5 드라이버와 한 명의 GP3 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는 레드불 주니어 팀에 좀 더 어린 새 멤버가 합류한다고 해서 그다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레드불 주니어 팀 합류와 포뮬러 르노 3.5 테스트 이후 단 6일만에 다음 시즌 F1 데뷔 발표라는 초고속 콜 업이 이뤄진 것은 이례적이다. 초고속 콜 업의 신화를 썼던 다닐 크비앗만 해도 2010년 레드불 주니어 팀에 합류하고 세 시즌 반 동안 하위 포뮬러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3시즌 GP3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거의 확정된 후에야 F1 콜 업이 결정됐다. 반면 크비앗보다 세 살 어린 막스 베르스타펜은 지난해까지 카트를 타다가 2014 시즌을 앞두고서야 포뮬러 경력을 쌓기 시작한 문자 그대로의 신예다. 드라이버에 대한 평가가 까다롭고 냉정하기로 소문난 레드불 주니어 팀에서 이렇게 빠른 F1 데뷔를 결정했다는 것은 막스 베르스타펜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실제로 지난 겨울 포뮬러 레이스카에 처음 오른 막스 베르스타펜은 ‘괴물’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 없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였다. 두 번째 포뮬러 르노 2.0 테스트에서 정규 드라이버의 기록을 뛰어넘은 뒤, 바로 F3 레이스카 테스트에 나서 이미 포뮬러 경력이 충분한 선배 드라이버들을 앞섰다. 덕분에 포뮬러 커리어의 시작부터 엔트리 포뮬러를 건너 뛰고, F3의 정상급 무대인 FIA 유로피안 F3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실버스톤에서의 첫 이벤트 세 번째 레이스에서 포디엄에 오른 뒤, 호켄하임링에서의 두 번째 이벤트 세 번째 레이스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스파와 노리스링의 레이스 여섯 차례 모두에서 우승한 막스 베르스타펜은 현재 챔피언십 2위를 달리고 있으며, 19번의 완주, 13차례의 포디엄 피니시와 8승이라는 놀랄만한 성적을 거뒀다. 올 시즌 처음 포뮬러카 커리어를 시작한 드라이버의 성적이라고는 믿기 힘든 성적이며, 나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과거에도 하위 포뮬러를 평정한 드라이버는 많았지만, 엔트리 포뮬러를 건너 뛰고 정상급 F3 무대에 나선 ‘열 여섯 살의 소년’이 이런 기록을 남긴 적은 없다. 비슷한 시기 메르세데스가 영 드라이버 프로그램 합류를 제의했던 것도 이런 성적에 자극 받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르스타펜을’사상 최강의 루키’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베르스타펜이란 이름은 F1 팬들에게는 낯설지 않다. 1994시즌 F1에 데뷔했던 요스 베르스타펜이 바로 막스 베르스타펜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요스 베르스타펜은 F1 데뷔와 함께 미하엘 슈마허의 팀메이트가 되었고, 베네통이 처음으로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위닝 시즌 두 차례나 포디엄에 올랐다. 데뷔 시즌 리타이어가 많긴 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던 요스 베르스타펜은, ‘윌리암스와의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경험 많은 조니 허버트를 영입하면서 팀에서 방출되었다.
1995시즌 이후 F1에서 요스 베르스타펜의 경력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베네통에서와 같은 포디엄 피니시 기회는 없었고, 중하위권 팀을 전전하면서 거의 매년 팀을 옮겼다. 2003시즌 미나르디에서 한 시즌을 보낸 것이 베르스타펜의 마지막 F1 커리어가 되었다. 이후 요스 베르스타펜의 커리어는 르망 24시간 LMP2 클래스에서 우승을 거두던 2008시즌에서 마지막 빛을 발했다.
1994시즌 F1에 데뷔하면서 화려하게 꽃피울 것 같았던 커리어가 여러 가지 문제로 원하던 방향에서 벗어난 뒤 요스 베르스타펜의 사생활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막스의 어머니는 많은 커리어를 쌓은 카트 드라이버였는데, 1997년 아들 막스를 낳을 때만 해도 이후의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스 베르스타펜은 폭행, 협박 문제로 법정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결별했지만, 사생활에서의 불미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아들 막스에게 드라이버로서의 재능을 제대로 물려준 것 하나만큼은 요스 베르스타펜과 어머니의 덕택이었다고 평가할 만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아 하위 포뮬러 무대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막스 베르스타펜이 F1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을까?
일단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위 포뮬러의 경력이 크게 부족한 상태에서 F1에 데뷔해 성공한 경우라면 현재 그리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페라리에서 활약 중인 2007 챔피언 키미 라이코넨이 ‘이렇다 할 하위 포뮬러 경력 없이’ F1에 데뷔해 성공했다.
2001년 자우버 소속으로 F1에 데뷔한 라이코넨은 카트에서 포뮬러 레이스카로 활동 무대로 옮긴 뒤 단 23회의 레이스를 펼치고 F1에 데뷔했다.
때문에 처음 F1에 데뷔할 때 부족한 포뮬러 레이스 경력은 큰 걸림돌이 되었다. F1 레이스카 테스트에서 괄목할만한 기록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F1 관계자들은 라이코넨의 즉각적인 F1 진출에 반대했다. 심지어 FIA 회장 맥스 모슬리마저 그에게 수퍼 라이센스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는 경력이 너무 적다는 것뿐이었다. F1 테스트를 통해 재능을 발견하고 시트를 내준 피터 자우버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었다면 현재의 라이코넨은 없었을지 모른다.
하위 포뮬러 경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은 막스 베르스타펜과 키미 라이코넨의 공통점이다. 막스 베르스타펜이 지금까지 40회의 F3 레이스를 경험했으니, F3 레이스 카에는 올라 보지도 못하고 바로 F1 시트를 차지한 라이코넨보다는 상황이 더 낫다고도 볼 수 있다. 라이코넨이 하위 포뮬러에서 56%의 가공할 승률을 기록한 반면 막스 베르스타펜의 F3 승률은 27.5%에 불과하지만, 경쟁하는 무대의 수준이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막스 베르스타펜의 승률이 낮다고 볼 수도 없다. 단 한 가지 너무 어린 나이만큼은 문제가 될 여지가 남아있다. 라이코넨은 경험이 적었다고 볼 수는 있지만 F1에 데뷔할 때 만 21세였다. 막스 베르스타펜의 데뷔 시점은 라이코넨에 비해 4년 이상 이른 셈이다.

사실 새로 F1 드라이버로 이름을 올리는 루키의 나이 문제로 우려를 표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올해 데뷔한 다닐 크비앗부터 세바스찬 베텔, 페르난도 알론소 등이 모두 만 19세의 나이로 F1 레이스에 나섰다. 조금 멀리 보면 1961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데뷔했던 리카르도 로드리게즈는 이들보다 조금 더 어렸다. 지금 언급한 드라이버들 모두가 F1 그랑프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거나 현재 보여주고 있다. 17세와 19세라는 나이 사이에 얼만 만큼 차이가 있는지를 계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단지 나이가 어린것만으로 문제’라고 얘기하기에는 문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나이 어린 드라이버에게 F1 레이스에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부족한 경험이 그랑프리에서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점과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F1 데뷔가 드라이버 자신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분명하게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위 포뮬러는 늘 비슷한 또래, 경력이 많아 봐야 3~4년 차이가 나는 드라이버들과 경쟁한다. 하지만 F1은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드라이버가 즐비하고(일부는 F1 경력만 10년 이상이다! ) 드라이빙 습관과 주행 패턴은 하위 포뮬러와 확연히 다르다. 올 시즌 데뷔한 마그누센과 크비앗이 종종 접촉 사고에 연루되는 것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물며 하위 포뮬러 경력까지 부족하다면? 심지어 막스 베르스타펜은 모국 네덜란드에서 운전 면허도 딸 수 없는 나이다. 내년 F1에 데뷔하는 시점에도 마찬가지다. 드라이버 라이센스가 없는 소년에게 수퍼 라이센스를 주어도 되는 것일까?
더 우려가 큰 부분은 충분히 경험이 쌓이지 않은 어린 소년이 F1에 데뷔해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가능성에 있다. 2009시즌 중반 갑자기 F1에 콜업된 하이메 알게수아리의 경우가 그랬다. 충분한 재능이 있었던 알게수아리였지만 결과적으로 F1 적응은 실패했고, 현재는 어지간해서 F1 무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다. F1은 ‘드라이빙만 잘 하면 되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때로는 기분 나쁘게 정치적이고, 때로는 머리 아프게 경제적이며 현 실적이다. 불합리한 부분도 많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다. 어떤 부분은 개선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은 드라이버가 참고 성장해나가야 한다. 자칫하면 억울함만 토로하다가 F1커리어가 끝나버릴 수도 있다.
막스 베르스타펜 본인이 자신의 F1에서의 성공 가능성과 빠른 콜 업이 안고 있는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 시점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위 포뮬러에서 보여준 임팩트는 과거 라이코넨이나 해밀튼, 베텔이 보여줬던 것 이상이며, 올 시즌 F1의 상위권에 자리를 잡은 리카도나 보타스 등과 비교해도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다. 적어도 가능성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퀄리파잉에서 탁월한 랩 타임을 기록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FIA가 수퍼 라이센스를 주지 않을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하지만 ‘그저 빠르게 달리는 것이 전부가 아닌’ F1 무대에서 막스 베르스타펜이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알게수아리의 경우가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위 포뮬러를 평정하고 F1에 진출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드라이버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단순하게 F1이 재미있으면 그만인 일반 팬의 입장에서야 어떻게 되든 흥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F1의 새 시대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사상 최강의 루키’ 막스 베르스타펜이 F1에 ‘조금 늦더라도’ 잘 정착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큰 사고 없이, 또한 큰 무리 없이 막스 베르스타펜이 2015시즌 이후 F1 커리어를 안정되게 시작할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