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브리드(hybrid)란 '잡종', '이종교배' 란 뜻으로, 하이브리드카(hybrid-car)는 서로 다른 형태의 동력원이 결합된 자동차를 말한다. 쉽게 말해 휘발유나 경유를 연료로 쓰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결합된 자동차가 ‘하이브리드카’이다.
하이브리드카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전기차 혹은 수소연료전지자동차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이브리드카를 근래 들어 선보인 첨단기술로 알고 있지만, 엔진과 전기모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카가 최초로 선보인 시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다. 따라서 하이브리드카의 모델명도 과거에서 찾아봐야 하는 법!
간단히 하이브리드카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전기차가 등장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세기경 로버트 앤더슨이 세계 최초로 축전지 전력으로 움직이는 전기차를 발명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중심으로 전기차들이 속속 등장했다. 1899년에는 벨기에의 카레이서인 카밀 제넷지가 직접 제작한 라 자메 꽁땅뜨(La Jamais Contente)라는 전기차를 타고 최고속도 105km/h라는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델명의 의미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이란 뜻.
하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엔진의 연소 효율성이 빠르게 향상된데다가 전기차의 최대 단점이던 무거운 배터리 문제로 인해 전기차는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대신 하이브리드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가 짧으면 짧고 길면 긴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역사 속에서 꼭 기억해야 할 하이브리드카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하이브리드 역사 속 한 획을 그은 자동차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결합된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카는 1987년 페르디난드 포르쉐 박사와 야곱 로너 엔지니어에 의해 공동 개발한 '로너-포르쉐 믹스테'이다. 개발자의 이름을 딴 '로너-포르쉐'와 '혼합'이란 뜻의 '믹스테(Mixte)'를 붙여 명명된 이 차는 4개의 타이어 각각에 전기모터를 장착하여 타이어마다 독립적인 구동이 가능했다. 시속 16km/h로 항속 주행할 때의 주행거리는 약 95km. 1900년 파리 엑스포에 처음 선보인 이 모델은 1906년까지 300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이후 1911년 미국의 전기차 전문업체인 Woods Motor Vehicle가 더 듀얼 파워 모델 44 쿠페(The Dual Power Model 44 Coupe)라는 하이브리드카를 생산해냈다. 이 하이브리드카는 배터리와 전기모터의 동력으로 시속 24km/h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짝을 이루는 4실린더 엔진은 최고 56km/h까지 속도를 냈다. 그런 의미에서 모델명을 더 듀얼 파워라고 한 셈.
하지만 당시 2,700달러라는 높은 가격과 A/S의 부재 등으로 인해 1918년까지 600대 정도 판매되었고, 이후로는 내연기관의 눈부신 발전으로 하이브리드카는 뒤로 밀리면서 1970년대까지 상징적인 차량들만 선보이는 수준에 그쳤다.
한동안 주춤했던 하이브리드카는 1970년대 초 하이브리드카의 대부로 꼽히는 전기기술자 빅터 우크에 의해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빅터 우크는 1972년도 뷰익 스페셜모델인 뷰익 스카이락(Buick Skylark)에 21마력의 힘을 내는 전기모터를 추가 탑재하여 가속할 때 엔진뿐만 아니라 전기모터가 동력을 보조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완성했다. 단순히 전기모터가 동력을 보조하는데 국한되지 않고 주행 중 배터리를 수시로 충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 데이비드 아처가 경량 스포츠카 오펠 GT를 개조하여 경이롭게도 연비를 무려 75mi/g(약 32km/l)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6볼트 배터리와 전기모터가 적용되면서 교체한 엔진이 겨우 6마력의 출력을 내는 잔디 깎는 기계의 엔진이었다는 점! 이후 1970년대부터 세계 각국의 완성차 메이커들은 자사 양산차를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카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토요타 프리우스에서 혼다 아큐라 ILX 하이브리드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이브리드카라고 하면 프리우스(Prius)를 떠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초로 양산되어 하이브리드카의 트렌드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리우스는 '선구자'라는 뜻의 라틴어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지만 세계에서 처음 나온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서 이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보인다.

토요타 프리우스의 성공에는 일본 자동차 시장의 상황이 한몫 한다. 디젤 승용차가 거의 없는 일본의 특성상 일반적인 가솔린 승용차보다 연비가 월등히 높은 하이브리드카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요타가 일본에서 판매되는 하이브리드 모델은 약 15개 모델에 이르고, 승용차는 물론 미니밴 심지어 소형트럭까지 다양하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은 토요타 프리우스는 2003년 2세대 모델을 출시한 데 이어, 2006년 미드사이즈 토요타의 세단 캠리(Camry)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여 캠리 하이브리드를 내놓았다. 잘 알다시피 일본어 '왕관(カムリ)'을 그대로 발음한 캠리라는 기존 모델명에 ‘하이브리드’를 붙인 것인데, 이런 방식의 모델명은 SUV 모델인 하이랜더, 대형세단 아발론의 하이브리드 모델에 그대로 적용됐다.

다만 최근에 선보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아쿠아(Aqua)는 물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친환경 이미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모델명인데, 해외에서는 아쿠아 대신 이전 명성의 ‘프리우스’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프리우스c’로 판매 중이다.
토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LEXUS)는 도심형 SUV RX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 데 이어 GS와 LS ES 등의 세단에도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며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구축해 왔다. 렉서스는 하이브리드의 첫 단어 h를 각 모델명 뒤에 붙여 일반 차량과 구분하는데, h 앞의 숫자는 일반 가솔린 엔진 배기량만큼의 힘을 낸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즉, 모델명에서 연비보다 동력 성능에 초점을 둔 게 특징이다.
그러다 렉서스는 전용 하이브리드 모델이 나오면서부터 별도의 모델명을 갖게 되는데, 2009년에 출시된 HS250h와 2010년 프리우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그대로 채용해 선보인 렉서스 컴팩트 해치백 모델 CT200h가 그것이다. 이 중 렉서스 최초의 하이브리드 모델인 HS250h의 HS는 'Harmonious Sedan' 약자로 조화로운 세단이란 뜻이고, CT는 'Creative Touring'의 약자이다. 또한 CT200h의 200h는 배기량 2.0L 가솔린 엔진 수준의 힘을 내는 하이브리드 모델임을 의미한다.
일본의 또 다른 자동차 브랜드 혼다는 1997년 도쿄모터쇼에서 하이브리드카 컨셉 모델인 J-VX를 선보인 데 이어 1999년 이 컨셉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한 하이브리드카 전용 모델 인사이트(Insight)를 양산하며 하이브리드카 시장에 진입했다.

통찰력이란 뜻의 인사이트는 프리우스와 달리 단지 엔진에 모터가 동력을 보조하는 수준인데, 프리우스만큼은 아니어도 혼다의 친환경성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상징적인 모델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혼다는 2001년 컴팩트 세단모델 시빅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추가했고, 미드사이즈 세단 어코드에도 전기 충전이 가능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추가했다.
인사이트에 이어 혼다는 2010년 스포츠 컴팩트 하이브리드 모델인 CR-Z를 선보였다. CR-Z는 'Compact Renaissance-Zero'의 약자로, 직역하면 '작은 르네상스 제로(?)'라는 뜻이지만 새로운 컴팩트카를 창조하기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 도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혼다의 고급 브랜드 아큐라(Acura)는 렉서스의 달리 2010년까지는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없다가 2011년 ILX라는 아큐라의 엔트리 세단을 선보이면서 하이브리드 라인업도 추가되었다. 아큐라 ILX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CR-Z와 시빅 하이브리드 모델의 것과 동일하며, 기존 모델명에 ‘하이브리드’란 단어를 붙여 명명한 것이다.
한편, 토요타와 혼다에 비해 닛산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양산한 시점도 늦고 아직까지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도 없다. 2007년 미드사이즈 세단 알티마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추가되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닛산이 자체 개발한 하이브리드가 아닌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밖에 마쯔다는 트리뷰트라는 모델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추가되었고, 미쓰비시는 SUV 모델인 아웃랜더에 P-HEV라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하여 판매 중이다.
1995년부터 선보인 국산 자동차 브랜드의 하이브리드카 모델명
1995년 현대자동차는 FGV-1이라는 하이브리드 컨셉 모델을 서울모터쇼에 전시했다. FGV-1은 '미래형 그린 자동차(Future Green Vehicle)'의 약자로 친환경 그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현대자동차의 의지를 담고 있었다. 실제로 2도어 해치백에 SUV 디자인이 가미된 FGV-1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크로스오버 모델로서, 주 동력원으로는 전기모터를 보조 동력원으로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다.

이어 현대자동차는 2000년 베르나 하이브리드를 양산하면서부터 기존 차량의 모델명에 '하이브리드'를 붙인 모델명의 하이브리드카를 내놓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클릭 하이브리드 모델을, 2005년에는 2세대 베르나 하이브리드를 양산하여 관공서 및 공공기관 대상으로 시범판매를 진행했다. 이 시기에 기아자동차도 자사의 인기 모델인 프라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을 양산하며 하이브리드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다 2009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LPG연료를 사용하는 아반떼 하이브리드 LPi 모델을 내놓은 데 이어 기아자동차도 발맞춰 포르테 하이브리드 LPi 모델을 선보였다. 당시 국내 하이브리드카 모델명은 하이브리드카의 동력 특징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LPG 분사 시스템인 'LPi' 단어를 하이브리드와 함께 쓴 것이다.
이후 2011년도에 현대자동차는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가 양산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말 한국지엠은 2.4L 가솔린 엔진에 전기모터가 동력을 보조하는 알페온 e-어시스트를 내놓았다. 여기서 e-어시스트라는 모델명도 동력을 전달할 때 엔진뿐만 아니라 전기모터가 동력을 보조하고 도와준다는 의미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다만 올해 말부터는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의 모델명에 변화가 생겼다. K7 하이브리드의 출시와 함께 단순히 '하이브리드'라는 단어를 붙이는 모델명이 아닌 '500h', '700h'처럼 별도의 하이브리드 모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는 최근 자사의 하이브리드 전략을 함축시킨 하이브리드 모델명의 의미를 발표했다. 'K5 500h'의 경우 앞의 5는 차급을, 가운데 0은 친환경 자동차로서 배기가스 0을 목표로 지향함을 의미한다. 또한 맨 끝의 0은 회생제동 등의 에너지순환을 0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숫자 뒤의 h는 하이브리드의 첫 글자를 따 친환경차의 선두주자란 이미지를 부여한 것. 또한 이러한 모델명의 변화는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완성해 다양한 고객 수요를 맞추고 고객에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K5 500h는 일반 가솔린 모델과 차별화를 둔 역동적인 디자인을 통해 연비 등 실용성에 민감하고 얼리어답터 성향이 강한 2030대 타깃의 중형 모델로서, K7 700h는 파워풀한 성능과 프리미엄급 고급사양과 편의기능에 관심 많은 30대 중후반 및 40대 초반을 겨냥한 준대형차 모델로 양대 라인업을 구축하여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참고로 'ECO HYBRID'라는 앰블럼이 붙을 K5 500h와 K7 700h의 공식 복합연비는 각각 16.8km/l와 16km/l이다.

물론 런칭 전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일반 가솔린 모델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하이브리드 전용으로 바꿈과 동시에 모델명에도 변화를 준 것은 고무적이라고 본다.
다만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에서도 토요타나 혼다처럼 하이브리드카 전용 모델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하이브리드카 전용 모델이라고 해서 일반 자동차 모델에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추가된 모델보다 연비가 더 뛰어나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친환경성'이라는 상징성은 굳힐 수는 있으니 말이다.
관건은 연비! 요즘 하이브리드카 연비가 좋지 않다며 일부 오너들과 언론매체들이 이견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이 모두 틀리지는 않다. 특히 스포츠 주행빈도가 많으면 어떠한 하이브리드 모델이든 연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킷이나 와인딩 등 스포츠 주행을 위주의 운전자라면 하이브리드보다는 일반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다만 하이브리드카는 어떤 모델이든 여유롭게 운전을 하고 수시로 에너지 흐름도를 체크하면서 주행해야 운전자가 원하는 연비를 얻을 수 있다는 점. 한마디로 연비 운전 습관을 들여야 원하는 연비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